[MZ 톡톡] 내 안의 '발작버튼'

입력 2024-11-03 17:11   수정 2024-11-04 00:03

누구나 저마다의 ‘발작버튼’이 있다. 일상에서도 자주 접하는 이 신조어는 나를 화나게 하는 민감한 주제를 접했을 때 주체할 수 없는 반응이 나온다고 하여 이름 붙여졌다. 길을 걷던 와중에 일면식이 없는 사람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에도 내 상처가 건드려져 발작버튼이 눌릴 때가 있다. 발작버튼은 미리 대비할 신호를 주거나 버튼 누르는 사람을 가리는 법이 없다.

치명적 약점을 비유하는 아킬레스건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의미다. 내가 운동에 재능이 없거나 노래를 못하는 식의 천성적 능력 부족은 비교적 인정하기 쉬운 약점이다. 그러나 발작버튼은 경험에 기반한 약점에 가깝다. 어린 시절 남들과의 비교에 시달린 트라우마가 심했던 사람은 직장 생활에서도 자신에 대한 인사 평가나 평가에 과도하게 불안을 느낄 수 있다. 남들에게 전혀 스트레스가 되지 않는 일도 누군가에겐 스치기만 해도 뼈저리게 아프다.

내가 어떤 주제와 상황에 유독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지 잘 아는 것도 중요하다. 물론 스스로 발작버튼이 무엇인지 알고 있어도 그 고통이 절로 사라지는 건 아니다. 내가 특정 상황을 마주하지 않기 위해 세상과 다른 사람의 행동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평생 피할 수 없는 고통임을 인정한다면, 결국 내 마음을 통제하는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된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기까지는 못하더라도 발작은 일으키지 않으려는 심정으로 말이다.

딱 2초만 참는 연습을 추천한다. 트라우마가 상기되는 상황이 온 순간 “또 이 시간이 찾아왔구나”라고 2초 중얼거리기라도 해본다. 순간적으로 심장박동수가 치솟고 표정이 일그러지겠으나 단 2초를 버티는 힘은 당장 분출할 화와 에너지양을 획기적으로 줄일 것이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자>는 책 제목처럼 순간의 기분이 나의 하루를 지배하지 않도록 다분한 노력이 필요하다.

고통에 대한 연민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 영화감독 이옥섭이 어느 유튜브에서 “미워하는 사람을 그냥 사랑해버렸더니, 세상에 미운 존재가 사라졌다”는 인상 깊은 말을 남겼다. 어떻게 보면 내가 가진 상처와 혼란스러운 감정들은 그 자체가 나쁜 것으로 볼 수 없다. 내가 아니면 그 어떤 누가 이 아픈 존재들을 대신 짊어지고 아껴줄 수 있는가. 비록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이들조차도 나를 채우는 귀한 조각임을 인정하고 계속 눈길 주려고 버릇해야 한다. 자기연민도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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