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식 거래량이 5년7개월 만에 최저를 기록하고, 채권 순매수액이 급감하는 등 시중 투자자금이 갈 곳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 한국 증시가 1년 내내 세계 꼴찌 수준에 머무르는 등 시장이 부진한 영향이다. 미국 대선을 앞두고 불확실성이 커지자 서학개미까지 차익 실현으로 돌아섰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시중자금은 은행 예·적금과 머니마켓펀드(MMF·초단기 금융상품) 등에 몰리고 있다.
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9월 유가증권시장의 하루평균 거래량은 2019년 3월 이후 가장 적은 3억6252만 주에 그쳤다. 증시가 활황이던 2021년 2월(약 16억6831만 주) 대비 약 5분의 1토막 났다. 지난 1일 하루 거래량은 3억1984만 주에 불과했다. 주식 투자 대기 자금으로 불리는 투자자예탁금은 1월 이후 지난달 말 처음으로 50조원 밑으로 내려앉았다. 시가총액 1위 삼성전자의 고전과 상장사 실적 부진, 미국 국채 금리 상승, 금융투자소득세 불확실성 등 전방위적 악재가 투자자의 급격한 이탈을 불렀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 증시의 대안으로 여겨져 온 미국 증시 투자자도 9월 이후 두 달 연속 순매도 우위로 돌아섰다. 안전자산인 채권 투자 열기가 급격히 식었다. 지난달 개인투자자의 채권 순매수액(2조8516억원)은 올해 들어 최저치를 기록했다. 기준금리를 인하했는데도 국채 금리는 오히려 크게 오른 영향이다.
갈 곳을 잃은 시중 자금은 은행 예·적금으로 몰렸다. 지난달 5대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전달 대비 11조5420억원 급증했다. 지난 한 달간 MMF에도 약 20조원의 뭉칫돈이 흘러 들어갔다. A증권사 강남지점 센터장은 “금 등 원자재 가격도 고점을 경신해 뛰어들기가 쉽지 않다”며 “고액 자산가들은 당분간 현금을 쟁여두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현금 30억 이상 고액자산가들…韓보다 해외주식 3배 더 팔아
미국 대선을 앞두고 미 증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국장 대신 미장’이라는 투자 불문율이 깨졌다. 미국 채권 금리가 급등하며 증시에 부담을 주는 점도 투자자들이 자금을 거두는 요인으로 꼽힌다. 큰손뿐 아니라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서학개미도 9~10월 순매도로 돌아섰다. 지난 두 달간 12억4000만달러어치를 팔아치웠다.
지난달 유가증권시장의 하루 평균 거래대금은 9조7068억원으로 1월(8조8748억원) 후 가장 적었다. 코스닥시장의 지난달 하루 평균 거래대금(6조798억원)도 2022년 11월(5조5924억원) 후 약 2년 만에 가장 적었다. 주식 거래의 손바뀜 정도를 보여주는 회전율도 바닥을 치고 있다. 9월 국내 증시 회전율은 19.63%로 2018년 9월(18.55%) 후 약 6년 만에 가장 낮았다.
시가총액 1위인 삼성전자가 약세를 이어가면서 국내 증시에선 주도주가 사라졌다. 하지만 개인 자금은 대부분 삼성전자에 묶여 있다. 9~10월 사이 삼성전자를 12조3549억원어치 순매수했다. 개인의 유가증권시장 전체 순매수 규모(11조1150억원)보다 많은 금액이다. 개인의 최근 3개월간 삼성전자 평균 매수가는 6만5850원이다. 지난 1일 종가와 비교한 손실률은 11.47%에 달한다. 강남지역 한 프라이빗뱅커(PB)는 “금투세 도입에 대한 결론이 미뤄지면서 큰손의 불안감이 여전하다”고 했다.
방황하는 시중 자금은 은행 예금을 비롯한 안전자산으로 몰렸다. 국내 5대 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의 정기예금 잔액은 6월 891조1524억원에서 지난달 942조133억원으로 5.7% 증가했다. 머니마켓펀드(MMF) 잔액(193조6805억원)도 한 달 새 약 20조원어치 불어났다. 같은 기간 상장지수펀드(ETF) 자금 순유입액 1위는 금리형 ETF인 ‘TIGER CD금리투자KIS(합성)’(4069억원)가 차지했다. 금융업계는 미국 대선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결과에 따라 부동자금의 향방이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심성미/배태웅/김보형 기자 smsh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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