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일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에 동의했지만 증권가에서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결정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도입 시기를 두 달 앞두고 폐지 결정을 내렸지만 국내 증시는 이미 최악의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장외 채권시장 역시 크게 위축됐다. 전문가들은 “금투세 폐지와 함께 상속세제 개편, 배당소득 분리과세 등이 조속히 처리돼야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가 해소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금투세 도입 여부는 올 하반기 내내 증시의 ‘시한폭탄’으로 여겨져 왔다. 금투세는 대주주 여부와 상관없이 주식·채권·펀드·파생상품 등 금융투자로 얻은 이익이 일정 금액(주식 5000만원·기타 250만원)을 넘으면 초과 액수에 대해 22~27.5%의 세율로 과세한다.
금투세 부과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큰 5억원 이상 주식을 보유한 개인투자자는 전체 투자자의 1%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들이 보유한 주식 평가액은 시가총액의 53.1%다. 이들이 해외 증시로 빠져나가면 국내 증시는 급락을 피할 수 없다는 우려가 시장을 짓눌러 왔다.
이 대표가 지난 7월 이후 ‘유예→보완 시행→유예→폐지’ 등 잦은 입장 변화를 보이면서 증시도 함께 출렁였다. 금투세 도입 논의가 본격화하면서 코스닥지수는 올초 대비 약 13% 급락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도 2.5% 떨어졌다. 한 증권사 프라이빗뱅커(PB)는 “증시 수준이 최악인 상황에서 비과세였던 매매차익에 세금을 매기겠다고 하니 고액 자산가 사이에선 반감이 컸다”고 말했다.
비과세였던 250만원 이상의 채권 매매차익에도 22~27.5%의 세율로 과세한다는 내용이 금투세 관련법에 포함됐다. 지난달 개인의 채권 매수액은 2조8516억원으로 올 들어 최저치를 기록했다.
국내 주식형 사모펀드업계도 폐지 결정 직전까지 ‘펀드런’(펀드 대량 환매)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금투세가 도입되면 주식형 펀드의 분배금을 정산할 때마다 투자자가 최고 49.5%의 세금을 내야 하기 때문에 연말에 펀드를 환매한 뒤 재가입하는 ‘촌극’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었다. 한 사모펀드 운용사 대표는 “금투세가 도입되면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영업은 중단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주요 증권사는 약 400억원을 허공으로 날리게 됐다. 10개 주요 증권사가 지난해까지 금투세 도입을 위해 전산 구축에 투입한 비용이다.
지주사 주가가 지나치게 저평가돼 있는 상황에선 헤지펀드 등이 경영권 분쟁을 일으키기도 쉽다. 정부는 상속세 최고세율을 기존 50%에서 40%로 낮추는 내용의 세법 개정안을 발표했지만 야당이 반대하고 있다. 정우용 상장사협의회 정책부회장은 “한국 증시 저평가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선 상속세율 완화와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프로그램 참가 기업의 세금 감면 논의가 꼭 필요하다”고 했다.
밸류업 성공을 위해선 배당소득세에 대한 분리과세가 추진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현재는 배당소득이 2000만원을 초과하면 다른 종합소득과 합산해 최고 49.5%의 누진세율이 적용된다. 배당금의 절반을 세금으로 내야 하는 만큼 오너가가 배당금을 높일 유인이 없다. 미국에서는 배당소득세가 15%로 분리과세된다. 일본과 대만은 다른 소득과 합산한 종합과세와 분리과세 중 본인에게 유리한 것을 선택할 수 있다. 홍콩은 배당소득세율이 0%다.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의장은 “배당 분리과세와 밸류업 기업의 세제 혜택 등이 함께 추진돼야 국내 증시가 질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심성미/배태웅 기자 smsh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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