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법인의 가상자산 계좌 발급을 허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금융당국의 정책 자문기구인 가상자산위원회에서도 법인 실명 계좌 발급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금융위원회는 자금세탁 가능성 등 위험 요인을 반영해 다음달 세부 방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본지 11월 1일자 A2면 참조
금융위는 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상자산위를 발족하고 첫 회의를 열었다. 가상자산위는 지난 7월 시행된 가상자산법에 따라 구성된 법정 자문기구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이 위원장을 맡았다. 위원은 금융위 및 관계부처 공무원, 법조인, 대학교수, 소비자 보호 전문가 등 15인으로 이뤄졌다.
가상자산위는 이날 회의에서 법인에 실명 계좌를 발급하는 방안을 중점적으로 논의했다. 현재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가상자산을 거래하려면 은행에 연결된 실명 계좌가 있어야 하는데 법인에는 계좌가 허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사실상 구두 행정지도로 은행을 통해 계좌 발급을 막고 있어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세계적으로도 법인의 암호화폐 투자를 허용하는 추세다.
회의에서도 금융당국이 법인 실명 계좌 발급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왔다. 최근 블록체인·가상자산 기술이 산업 전반에서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대체불가능토큰(NFT) 발행, 블록체인 플랫폼 구축, 디지털 지갑 등 가상자산 관련 시장이 커지는 것도 법인의 암호화폐 투자를 허용해야 하는 근거로 제시됐다. 한 가상자산위 위원은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 주요국에서는 법인 중심의 가상자산 생태계가 구축됐고, 국내에서도 가상자산법 시행 이후 시장이 안정화 추세를 보이고 있다”며 “변화한 국내외 여건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다만 법인 계좌 발급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가상자산 시장 위험이 산업계로 전이될 가능성이 있고, 자금세탁으로 활용될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에서는 법인 계좌 허용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기대감을 내비쳤다. 올해 상반기 국내 가상자산 시가총액은 55조3000억원이다. 업계에서는 법인의 암호화폐 투자가 허용되면 시장 규모가 두 배 이상 커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법인 투자가 허용되면 시장 안정성이 강화되고 암호화폐 신뢰도도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스테이블 코인 등 국경 간 가상자산 거래 규제도 가상자산위의 중점 논의 대상이다. 달러 가치와 연동하는 스테이블 코인은 달러처럼 쓰이지만, 정부 관리의 사각지대에 있어 외환 관리 리스크로 떠올랐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따라 가상자산을 제도권에서 엄격하게 관리하고, 자본 거래에 허용하는 방안이 신중하게 논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가상자산위는 시장 독과점 문제도 본격적으로 살펴보기로 했다. 시장 점유율이 70%에 달하는 업비트가 가상자산 가격 왜곡을 초래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다. 사업자 진입·영업행위 규제, 자율 규제 기구 설립 여부 등도 논의 대상이다. 상장 (거래 지원) 제도 개선과 관련한 방안도 다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당국은 가상자산위 검토 내용을 바탕으로 가상자산 관련 2차 입법을 추진할 방침이다. 김 부위원장은 “7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시행을 계기로 가상자산이 정부의 관리·감독 영역에 들어왔다”며 “이제는 무조건적인 두려움이나 믿음에서 벗어나 가상자산 미래를 고민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최한종/조미현 기자 onebe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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