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미국의 PC주의 피로감

입력 2024-11-08 17:37   수정 2024-11-09 00:27

“과도한 PC(정치적 올바름) 탓에 너무 많은 표를 잃었다.”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의 참패에 대한 외교안보 전문매체 포린폴리시의 진단이다. 트랜스젠더 선수의 여성부 출전을 지지하는 등 PC에 대한 집착이 유권자에게 피로감을 안겼다는 설명이다.

PC주의를 둘러싼 논쟁은 치열하다. 지지하는 쪽은 차별은 용납할 수 없는 것이라 하고, 부정하는 쪽은 너무 맹목적이라고 한다. 민주당 내 PC주의 확산의 시초로는 오바마 전 대통령이 꼽힌다. 임기 말인 2016년 공립학교에 생물학적 성과 상관없이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행정지침을 내렸다. 이른바 ‘성중립 화장실’이 설치되며 논란과 반발을 불렀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동성애, 흑인을 차별하는 내용이 포함된 책의 학교·공공도서관 비치 금지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이제 PC는 민주당의 강력한 동력이 됐다. 해리스가 대선 후보가 된 것도 흑인, 여성, 비명문대라는 조건(?) 덕분이었다는 분석이 있을 정도다. 차기 대권 후보로 거론되는 바텐더 출신 히스패닉계 여성 정치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도 PC주의 상징 인물이다. ‘노동 착취 기업에 세금으로 장려금을 줄 수 없다’며 아마존의 뉴욕 본사 설립을 저지한 주역이다.

PC주의는 잘 작동하면 평등의 질을 제고한다. 문제는 극단주의다. 동성애에 찬성하면 선, 유보적이면 악으로 치부하는 식의 흑백논리로 만사를 재단한다. ‘남성의 시각적 강간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줘 여성 해방적’이라며 부르카를 변호하기도 한다. 피억압자의 주관적 경험과 인식을 절대적 진리로 상정하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PC주의에 대한 피로감을 십분 활용했다. 가족, 신앙, 소명 등 미국의 전통적 가치를 앞세워 역차별에 민감한 20, 30대 청년층을 우군으로 끌어들였다. ‘정치적 선은 너무 멀리 나갔다’며 적잖은 무슬림 흑인 남성도 트럼프로 돌아섰다.

PC주의에 대한 반성은 유럽에서도 광범위하다. 스웨덴에서까지 위선적 PC주의 탓에 범죄천국이 됐다며 강경 우파 정당이 인기다. 한국은 과잉 PC주의의 안전지대인가.

백광엽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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