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갈망하는 유권자들 표심이 트럼프의 승리를 견인했다. 많은 유권자가 해리스를 ‘바이든 2.0’으로 받아들였다. 트럼프야말로 진정한 변화를 주도할 정치인으로 평가했다. 최근 실시된 ABC·입소스 여론조사에서 74%가 미국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응답했다. 뉴욕타임스·시에나대의 10월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중 75%가 경제 상황을 부정적으로 보았다. 9월 인플레이션율이 2.1%로 둔화하고 3분기 2.8%로 탄탄한 성장세를 보였지만 많은 사람이 경제 여건이 개선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트럼프는 재임 시 경제가 순항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강조했고 이런 주장이 먹혀들었다. 경제와 민생 문제를 해결할 적임자라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선벨트의 노스캐롤라이나주와 조지아주뿐 아니라 펜실베이니아주, 위스콘신주 같은 동북부 러스트벨트에서 이긴 것은 경제를 살릴 것이라는 유권자의 기대감 때문이다.
불법 이민에 대한 끊임없는 문제 제기가 대선 승리의 또 다른 주역이다. “이민자가 우리의 피를 더럽힌다”는 반이민 주장을 보수층과 백인 근로자층에 어필했다. 외국인이 불법으로 입국하고 도시 거리를 활보하는 선동적인 메시지를 널리 홍보했다. 버지니아주 집회에서는 “도시 교외가 공격받고 있다”며 백인 중산층의 불안 심리를 자극했다. 경찰을 죽인 이민자를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강경한 발언을 반복했다. 바이든 정부의 아킬레스건인 국경 불안과 도시 치안을 집중 공격했다. 도시 치안 불안과 빈곤 심화 문제를 바이든 정부의 리더십 부족으로 몰아붙였다. 민주당 텃밭인 뉴욕주와 캘리포니아주의 불법 이민 급증을 맹공격했다. 멕시코 접경에서의 불법 입국 문제도 뜨거운 감자가 아닐 수 없다. 대규모 불법 이민자 추방과 엄정한 법 질서 유지 구호가 표심을 흔들었다. 주요 여론조사에서 경제와 불법 이민이 투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핵심 변수로 확인됐다.
트럼프 열성 지지층이 승패를 결정지었다. 콘크리트 지지층, 광팬으로 불리는 열렬 지지자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지지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인구의 15%를 차지하는 중소 도시 및 농촌에 사는 유권자들이 트럼프의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이다. 인구 2만 명 이하 지역 거주자의 90%가 트럼프를 지지한다. 저학력 백인 근로자층이 러스트벨트 승리를 견인했다. 1980년 고졸 백인 남성의 소득이 근로자 평균보다 7% 높았지만, 현재는 10% 정도 낮다. 흑인, 히스패닉 계층보다 떨어진다. 저성장과 제조업 공동화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음주, 마약, 자살 등 절망의 질곡에 빠졌다.
“내가 당신의 목소리” “나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식의 트럼프의 허장성세가 그들에게 구원의 음성으로 다가왔다. 미국의 산업과 근로자를 보호하겠다는 약속에 한 가닥 희망을 걸었다. 트럼프는 저학력 백인 근로자의 불만과 절망을 적극 옹호하는 투사로서 자리매김했다. 흑인 대통령 탄생과 백인 사회적 지위 하락이 겹치면서 ‘지방 거주 백인의 분노’가 트럼프 부활의 일등 공신이 되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이후 가장 서민적인 행보를 보여준 점, 사람을 즐겁게 하는 능력이 탁월한 점, 미디어 정치에 능해 언론 매체의 끊임없는 관심을 유발하는 점 등은 독보적이다. 부자 감세 등 부유층과 기득권층 중심 정책을 폈지만 백인, 특히 저학력 백인의 지지를 확보했다.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같은 간단명료한 슬로건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뛰어나다. 빌 어데어 듀크대 교수는 “미국 정치에서 트럼프만큼 거짓 주장을 한 정치인이 없다”고 비판하지만, 트럼프는 47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이제는 미국인의 선택을 존중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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