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 눈앞에 펼쳐 놓은 ‘민주적 사회주의’ 모델은 1976년 법제화된 독일의 노사 공동결정(Mitbestimmung)에 이르러 만개했다. 한국 노동운동이 절정에 달한 1980년대, 불과 몇 년 전 독일에서 현실화된 이상(理想)에 당시 좌파 리더들이 얼마나 심취했을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독일의 노사 공동결정은 감독이사회에 노동자 대표들이 참여하도록 명문화한 제도다. 2000명 이상의 직원을 고용한 대기업은 노동자 몫으로 절반을 할애해야 한다. 감독이사회는 기업의 중요한 경영 결정을 감독하고, 경영진의 임명과 해임에 대한 권한을 가진 기구다. 자본과 노동의 ‘그랜드 바게닝’(거대한 타협) 결과물인 이 제도는 독일을 다시 한번 유럽의 패권국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폭스바겐그룹 등 독일 기업은 너나 할 것 없이 중국으로 몰려갔다. 중국을 ‘독일의 공장’으로 활용해 자유 무역 질서의 혜택을 최대한 누렸고, 중국이라는 거대한 내수 시장이란 엄청난 보너스도 안겨줬다. 폭스바겐의 중국 자동차 시장 점유율은 2018년 20%에 육박했다.
현재 폭스바겐그룹이 처한 상황은 막다른 길목에 서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생산성은 도요타의 절반이고, 중국 시장 점유율은 둑이 터진 것처럼 급전직하해 10% 선마저 위협받고 있다. 그럼에도 감독이사회에서 절반의 권한을 가진 노조는 물론이고, 폭스바겐 본사가 있는 지방정부(로어 색소니)는 경영진의 변화 요구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독일 정부도 현상 유지를 종용하면서 세계 2위 폭스바겐그룹은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거대한 전환’ 앞에 쩔쩔매고 있는 독일은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일국(一國)에 국한한 이상주의로는 각자도생과 첨단 테크놀로지의 격변 속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을 말이다. 미국 우선주의를 노골적으로 내세운 ‘트럼프 스톰(폭풍)’은 독일을 궁지로 몰아넣는 두 개 기둥의 붕괴를 가속화하고 있다. 독일을 유럽의 병자로 만들고 있는 이 같은 위기가 한국에 조만간 더 큰 파도로 덮칠 수 있다는 얘기다. 집권 야망에 불타는 한국의 좌파는 이 같은 질문에 답할 준비가 돼 있는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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