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관계자들은 요즘 그를 두고 ‘프레지덴셜하다’(대통령 같아 보인다)는 수식어를 자주 붙인다. 준비된 대통령으로서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한 의도된 표현이다. 이 대표의 지지율도 덩달아 올라가는 걸 보면 여론이 어느 정도 반응하고 있다는 것인데, 예사롭지 않다.
엊그제 한국경영자총협회와의 정책 간담회도 정치적으로 기획된 자리이겠지만, 뒷얘기를 들어보면 이 대표의 의도가 먹힌 자리였다. 그가 공개 첫머리발언에서 “경총이 전달한 제안서는 거의 수용하기 어려운 일방적인 얘기”라고 강한 어조로 부정할 때만 해도 다들 긴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곧이어 5대 그룹 관계자만 모아놓고 진행한 비공개 오찬에서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는 후문이다. “성장이 곧 복지다” “기업이 잘 돼야 나라가 잘된다”는 친기업 발언을 쏟아냈고, “기업인 관련 배임죄는 폐지하는 게 맞다”며 민주당 입장에선 다소 파격적인 얘기도 내놨다고 한다.
삼성 관계자가 주 52시간제로 빚어진 반도체 현장의 어려움을 얘기하며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연구개발 인력에 대한 근로시간 규제 예외적용)을 제안하자 “합리적인 개선에 누가 반대하겠나. 유연하게 대응하겠다”며 배석한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에게 전향적으로 검토하자는 주문까지 했다.
이 대표는 이날 정책 간담회를 끝내고 매우 만족해했다고 한다. 참석한 기업인들 평도 긍정적이다. 한 기업인은 “의외로 실용주의 면모가 엿보였다. 마주하고 보니 상당히 유연해보이고 정치인으로서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더라”고 했다. 이 대표는 2022년 대선 때도 대기업 그룹별로 돌아가며 비공식 자리를 가진 적이 있다. 당시 S그룹 경영진과의 간담회 이후 한 계열사 CEO가 “기업인들은 역대 대통령 중 노무현을 가장 좋아하는데 이재명에게 노무현 냄새를 느꼈다”고 품평한 말이 기업들 사이에 회자되기도 했다. 실제 기업인들 얘기를 들어보면 겉으로는 친기업을 외쳤지만 임기가 지나면서 기업에 부담을 준 이명박, 박근혜 등 보수 대통령보다는 오히려 기업을 위해 실용주의 노선을 걸은 노무현을 좋아한다는 경영자가 많다.
이런 인식 때문인지 항간에선 이 대표의 최근 우클릭 행보를 놓고 ‘노무현 따라 하기’란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여러 경제 정책에서 보여준 우클릭은 적어도 정치공학적으로 접근해 내린 결론이 아니었다. “노무현은 정책에서만큼은 이념을 배제한 채 실리를 중심으로 판단했다. 우클릭을 끊임없이 견제했던 386 참모들과 우파 경제관료 사이에서 치열한 고심 끝에 무엇이 경제에 도움이 될지만 놓고 정책을 폈다”는 게 당시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씨 평가다.
이 대표의 ‘노무현 따라 하기’가 먹히려면 관건은 진정성에 있다. 이념이 덧칠한 각종 규제로 기업이 제대로 숨을 못 쉬고 있다는 것을, 서민이 받는 고통만큼이나 가슴 아프게 느끼고 챙기겠다는 그 진정성이다.
그가 노무현식 실용주의 노선을 걷겠다면 지지 세력의 눈치를 보며 끝까지 고수하고 있는 상법 개정안부터 전향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은 기업을 상대로 한 각종 소송과 분란을 부추겨 정상적인 경영을 못하게 하는 악법으로 기업에는 생사가 걸린 중대한 사안이다. 그는 지난주 금투세 폐지로 돌아선 배경에 대해 “주식시장에 기대고 있는 1500만 주식 투자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한마디로 1500만 투자자의 표를 무시할 수 없었다는 얘기다. 금투세는 표에 도움이 되니 뒤집고, 상법 개정안 반대는 지지 세력의 반발만 부를 뿐 표에는 큰 도움이 안 되니 거부하는 것인가.
이 대표의 최근 행보가 정치공학적 접근에 그친다면 그가 아무리 친기업, 실용주의 노선을 부각한다고 하더라도 외연 확장은 어림없다. 민주당이 붙인 수식어대로 지금 순간은 프레지덴셜해보일 수 있겠지만, 환상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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