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노조 사업장에서 두 노조가 연합해 조합원 수가 전체 근로자의 과반수라면, 이들이 근로자대표 자격으로 회사와 합의할 수 있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근로자대표가 반드시 단일 노조이거나, 근로자 전체가 참여해 직접 선거로 뽑을 필요는 없다는 의미다. 실질적으로 근로자 과반수를 대표한다면 '노조의 연합'이라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대표로 인정될 수 있다고 본 첫 판결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제48민사부(주심 김도균)는 지난 7일 한국중부발전 소속 근로자 155명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임금 청구 소송에서 이같이 판단했다.
중부발전은 노조가 여러 개 있는 복수노조 사업장이다. 2016년 1월 한국중부발전노동조합(중부노조)과 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중부발전본부(발전노조)는 교섭창구 단일화 과정에서 연합(중부연합노조)하기로 했고, 당시 두 노조 조합원 숫자가 전체 근로자 과반수였기에 ‘과반수 노조’ 지위에서 2017년에 단체협약과 임금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연합노조는 2017년 12월 회사와 '탄력적 근로시간제' 도입에 합의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하려면 사용자는 ‘근로자대표’와 서면 합의를 통해 대상 근로자 범위, 단위 기간, 근로일과 근로시간 등을 정해야 한다. 발전노조와 중부노조의 대표자가 각각 ‘근로자대표’로서 합의서에 서명을 했다.
이 사건에서는 이들 노조 연합이 '근로자대표' 자격이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근로기준법 24조는 ①근로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엔 그 노동조합 ②과반 노조가 없는 경우에는 근로자의 과반수를 대표하는 자를 근로자대표로 보고 있다.
원고인 근로자들은 "두 노조는 사건 합의 당시 과반수 근로자로 조직된 ‘단일 노조’가 아니었다”며 “전체 근로자 과반수 동의를 얻어 선출된 근로자 대표도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정당하게 뽑힌 근로자대표와의 합의로 도입되지 않은 탄력근로제는 절차적으로 위법·무효이므로 그에 따라 근로시간을 다시 계산해 연장근로수당, 퇴직금중간정산금 차액 등을 지급하라고 소송을 낸 것이다.
이에 대해 회사 측은 "탄력적 근로시간제 합의 당시 두 노조 조합원 수를 합치면 전체 근로자의 과반수를 초과하고 실질적으로 근로자대표의 역할을 했다"며 "따라서 두 노조 대표자와 합의를 체결한 것은 유효하다"고 맞섰다.
법원은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서는 전체 조합원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과반수 노조)이 교섭대표노동조합이 되는데, 이때 과반수 노조에는 2개 이상의 노조가 연합하는 등의 방법으로 과반수가 되는 경우를 포함한다“며 “연합의 방법으로 과반수가 되는 경우, 곧바로 근로기준법상 ‘과반수 노동조합’으로 보기는 어렵더라도, 탄력적 근로시간제 등에 대한 합의 주체로서 실질적으로 ‘근로자의 과반수를 대표하는 자’로 볼 수 있는지 판단할 때 노동조합법 규정을 참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또 “근로기준법에서 근로자 과반수를 대표하는 근로자대표를 선출하는 방법을 규정하고 있지 않다”며 “반드시 근로자들로부터 직접 선출하는 방식으로만 근로자대표의 민주적 정당성이 갖춰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근로자대표를 뽑을 때 반드시 근로자들이 직선할 필요는 없다는 설명이다.
이밖에도 발전노조와 중부노조 연합이 2016년도 임금협약을 체결한 점, 소속 근로자들 상당수 사이에서 탄력적 시간근로제의 시행에 관한 공감대가 형성된 점, 근로자들은 수년 동안 탄력근로제 합의 효력에 대해 아무런 이의 제기가 없었고, 두 노조의 대표자들을 근로자대표로 인식해 온 점 등도 판결의 근거로 작용했다.
회사측을 대리한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법상 근로자대표가 단일 노조여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며 “근로자대표제도 취지도 실질적으로 근로자들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보는, 이른바 실질설을 택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근로자대표의 적법성 여부를 둘러싼 분쟁이 늘고 있는데 큰 시사점을 주는 판결”이라고 덧붙였다.
곽용희 좋은일터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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