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툴리눔톡신(일명 보톡스)의 내성이 생기면 제품을 바꿔도 소용없습니다. 수년 동안 효과가 없을 수 있습니다.”
박제영 오라클피부과 대표원장은 최근 베트남 하노이에서 한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지난 7일 ‘신경독소의 윤리적 사용을 위한 에스테틱 위원회(ASCEND)’가 하노이에서 개최한 아시아·태평양 지역 기자간담회에 한국 대표 전문가로 참석했다.
보툴리눔톡신은 치료용뿐만 아니라 다양한 미용 목적으로 적응증이 확대되고 있다. ASCEND 간담회에 참여한 각국 전문가들은 “의료진과 환자 모두 보툴리눔 톡신의 ‘내성’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아시아·태평양 9개국에서 보툴리눔톡신 시술자 2588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효과 감소를 경험한 비율이 81%에 달했다. 이는 2018년 69%에서 6년 만에 10%포인트 이상 증가한 수치다. 보툴리눔톡신 효과 감소는 내성 발생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주요 증상이다.
박 원장은 “보툴리눔톡신 효과가 나타나지 않기 시작하면 아예 시술을 중단해야 한다”며 “가장 위험한 건 환자가 의료진의 테크닉 때문에 효과가 없는 것으로 오해하고 다른 병원으로 옮겨가 보툴리눔톡신의 여러 브랜드를 바꿔가며 계속 시술받는 것”이라고 했다.
내성 가능성에 대해 기존에 시술받은 의료진과 상담할 것을 강조했다. 그는 “효과가 없는 건 중화항체 형성으로 인해 내성이 생겼다는 의미”라며 “중화항체가 줄어들 때까지 최소 수개월에서 최대 수년까지 보툴리눔톡신 효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 원장은 “최근 한국에서 보툴리눔톡신의 고용량·다빈도 시술이 늘고 있어 내성 발생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며 “의료진은 환자와의 체계적인 상담을 통해 시술 이력·목적 등을 자세히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환자에게 내성 위험을 최소화하는 안전한 시술 옵션을 안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내성을 예방함으로써 환자들은 장기적으로 보툴리눔톡신 효과를 누릴 수 있다”며 “특히 이는 톡신이 미용뿐만 아니라 다양한 질환 치료 목적으로도 사용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밝혔다.
보툴리눔톡신의 중화항체는 ‘복합단백질’이 원인이다. 보툴리눔톡신은 신경독소와 복합단백질로 구성돼 있다. 신경독소는 보툴리눔톡신 효능에 관여하는 핵심 물질이다. 반면 복합단백질은 효능과 무관하며, 중화항체를 만드는 불순물이다.
독일 면역학자인 마이클 마틴 교수는 “예전에는 과학자들이 복합단백질이 보툴리눔톡신의 신경독소를 보호한다고 믿었지만, 이제 이 학설이 잘못됐다고 밝혀졌다”며 “보툴리눔톡신을 주입하면 신경독소와 복합단백질이 분리되고, 복합단백질이 면역원성을 일으키고 내성을 발생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은 허가받은 보툴리눔톡신 제품이 많은 나라로 꼽힌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국내 품목허가를 받은 보툴리눔톡신 제품이 17개에 이른다. 이 중 복합단백질이 없는 제품은 독일 멀츠의 제오민과 한국 메디톡스의 코어톡스 등 두 개다.
호주의 니브 코도프 박사는 “많은 소비자가 고용량 혹은 짧은 주기로 시술받는 등 보툴리눔톡신 내성이 발생하고 시술 효과가 감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를 예방할 수 있는 주요 방법 중 하나는 복합단백질이 없는 보툴리눔톡신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노이=김유림 기자 youfore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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