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 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내년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2%에서 3.0%로 낮췄다. 관세 인상 등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로 글로벌 교역이 위축되며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일어나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KIEP는 1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내년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5월 3.2%에서 3.0%로 0.2%포인트 내렸다. 주요국이 기준금리 인하에 나섰지만, 경기를 진작시킬 수준은 아닌데다 트럼프 재집권으로 통상 리스크가 커지며 올해(3.1%)보다 성장세가 약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마저도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주의 조치가 빨라지면 하향 조정될 수 있다고 KIEP는 지적했다.
주요국 성장률은 미국, 인도 등을 제외하고 대부분 끌어내렸다. 대표적으로 중국은 경기 부양책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귀환에 따른 강력한 제재와 고율 관세 영향 등으로 종전 대비 0.4%포인트 낮은 4.1% 성장을 예상했다. 올해(4.8%)보다 0.7%포인트 낮은 수치다. 유로존(1.3%)은 독일(0.8%)의 성장 부진에 따라 1%를 소폭 웃도는 수준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내년 미국 성장률은 직전 전망치보다 0.4%포인트 높인 2.1%로 제시했다. 올해 성장률(2.8%)보다는 저조하지만 트럼프 정부의 감세 정책이 조기 시행되면 투자가 살아나며 안정된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이시욱 KIEP 원장은 "내년 세계경제 성장 흐름의 키워드는 '강화되는 트럼피즘(미국 우선주의), 심화하는 성장 격차'로 요약된다"며 "미국의 성장세가 지속되고 경쟁 대상국들의 성장세는 둔화하는 차별화 양상이 전개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주의 조치가 조기 집행될 경우 내년 세계 경제성장률이 더 떨어질 수 있다고 KIEP는 지적했다. 정영식 KIEP 국제거시금융실장은 "트럼프 정부 1기 때는 실제 관세 인상이 2018년 중순부터 진행됐는데 (이는 집권 후) 13~16개월 시차를 두고 움직인 것"이라며 "하지만 트럼프 2기 때는 이보다 조금 더 빨라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경기침체 가능성도 거론했다. KIEP는 보고서에서 "첨단기술 수출통제 영역의 확대, 다른 주요 동맹국들과의 통상 마찰 발생으로 세계 교역과 글로벌 인플레이션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며 "신흥국들은 금융 불안과 함께 성장률이 하락하고, 글로벌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 리스크가 현실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당선이 촉발한 최근 강달러 현상은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지다가 완화할 것으로 관측했다. 정 실장은 "트럼프 정책이 완전히 정립되기까지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내년 상반기까지 강달러 움직임이 지속되지만 실제로 정책이 진행되는 과정에선 (달러 강세가) 약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미국이 무역수지 개선을 하기 위해 달러 약세를 선호할 수 있다는 점은 강달러를 완화할 요인으로 꼽았다. 내년 미국 경기 성장세가 둔화하면 미 중앙은행(Fed)이 추가 금리 인하에 나설 수 있다는 점도 이유로 들었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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