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이 있으면 국적 나이 성별을 따지지 않겠다.”
이같은 인사 원칙을 갖고 있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파격적인 결정을 했다. 호세 무뇨스 현대자동차그룹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사장) 겸 북미·중남미법인장을 현대차 최고경영자(CEO)로 선임한 것. 외국인이 국내 주요 대기업 CEO를 맡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15일 산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 CEO 인사를 이날 발표했다.
이번 인사에서 현대차그룹은 장재훈 현대차 사장을 완성차 담당 부회장으로 승진하고, 호세 무뇨스 최고운영책임자(COO) 겸 북미권역본부장을 CEO에 선임하는 내용을 담은 사장단 인사를 단행했다. 현대차그룹에 전문경영인 부회장이 다시 나오기는 3년 만이고, 외국인 CEO가 탄생한 건 처음이다.
이 중 가장 큰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현대차 CEO로 내정된 무뇨스 사장이다.
무뇨스 사장은 스페인 출신이다. 도요타 유럽법인과 닛산 미국법인 등을 거쳐 2019년 현대차에 합류해 글로벌 COO 겸 북미·중남미법인장을 맡으며 활약했다.
수치로도 나타난다. 무뇨스 사장이 합류한 뒤 현대차그룹 북미법인 실적은 눈에 띄게 개선됐다. 가솔린 세단 중심이던 주력 판매 차종을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전기차, 하이브리드카로 전환하는 동시에 브랜드 파워를 키우는 데 일조했다.
무뇨스 사장의 지휘 아래 2018년 68만 대이던 현대차의 미국 판매량은 지난해 87만 대로 뛰었다. 특히 가솔린 세단보다 값이 비싸고 수익성도 좋은 SUV와 하이브리드카, 전기차에 힘을 준 덕분에 현대차 미국법인의 매출(15조2928억원→40조8238억원)과 순이익(3301억원 순손실→2조7782억원 순이익)은 더 큰 폭으로 개선됐다.
무뇨스 사장이 CEO로 취임하게 되면서 현대차는 북미를 비롯한 글로벌 시장 판매 확대에 더욱 주력할 것으로 예상한다. 특히 그는 친환경차 판매 확대에 주력할 것이란 예상이다.
무뇨스 사장은 최근 미국 현지에서 기자와 만나 “뛰어난 디자인, 기술, 품질, 안전을 두루 갖춘 친환경차 라인업을 완성한 만큼 전동화 전략을 지속해서 실행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전기차 캐즘(대중화 직전 수요 둔화)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날 수록 친환경차 수요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주한 미국대사 등을 역임한 성김 고문역도 그룹 싱크탱크 사장에 영입·임명하면서 북미 시장 공략과 글로벌 통상·정책 대응에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장재훈 신임 부회장의 어깨도 더욱 무거워졌다. 장 부회장은 2020년 말 현대차 대표이사에 취임한 이래 현대차·기아의 세계 3위 등극과 최근 인도 법인의 현지 증시 IPO(기업공개) 등의 성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장 부회장은 앞으로 상품 기획부터 공급망 관리, 제조·품질에 이르는 밸류 체인 전반을 관장할 예정이다.
한편 기아 국내생산담당 및 최고안전보건책임자(CSO)를 맡은 최준영 부사장과 이규복 현대글로비스 대표이사 부사장은 사장으로 승진한다.
현대트랜시스에선 백철승 부사장이 오준동 현대케피코 상무는 부사장으로 승진하며 대표이사에 내정됐다. 현대건설 대표에는 이한우 전무가 부사장으로 승진하며 내정됐고, 현대엔지니어링 대표에는 주우정 기아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하며 내정됐다. 여수동 현대트랜시스 사장, 유영종 현대케피코 부사장, 윤영준 현대건설 사장, 홍현성 현대엔지니어링 부사장은 고문 및 자문에 위촉될 예정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이번 임원인사는 역량·성과를 중심으로 글로벌 차원의 미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인사”라며, “대표이사·사장단 인사에 이어 12월 중순에 있을 정기 임원인사를 통해 성과 중심의 과감한 인적 쇄신뿐 아니라 중장기 경쟁력 강화를 위한 선제적 육성 및 발탁 등을 이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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