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만전자' 찍자 특단 조치…초강력 주가부양 카드 꺼냈다

입력 2024-11-15 19:44   수정 2024-11-15 20:14


삼성전자가 오는 18일부터 1년간 10조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한다. 연초 이후 주가가 30% 넘게 하락하면서 기업 가치가 청산 가치를 밑도는 수준까지 떨어지자 투자자를 달래기 위해 ‘초강력’ 주주환원 카드를 꺼낸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전자는 15일 이사회를 열고 이 같은 계획을 의결했다. 우선 18일부터 3개월간 3조원 규모 자사주를 장내 매수해 전량 소각하기로 했다. 보통주 5014만4628주, 우선주 691만2036주 규모다. 전체 발행 주식 수에서 차지하는 매입 주식 비중은 각각 0.84%다. 삼성전자는 “나머지 7조원어치 자사주 매수 시점은 주주가치 제고 관점에서 활용 방안과 시기 등을 다각적으로 논의한 뒤 결정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매수 규모는 삼성전자가 보유한 현금·현금성 자산(올 3분기 말 기준 103조7765억원)의 9.6%에 달한다. 인수합병(M&A)이나 연구개발(R&D)·시설 투자가 아닌, 주주환원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기로 결정한 건 ‘주주가치 제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연초 이후 이날까지 삼성전자 주가는 32.8% 떨어졌다. 같은 기간 TSMC(74.5%), 미디어텍(29.5%), SK하이닉스(25.1%) 등 경쟁사 대비 부진한 결과다.

삼성전자는 2015년과 2017년에도 각각 11조4000억원, 9조3000억원 규모 자사주 매입 소각·계획을 발표했다. 처음 자사주 매입 계획이 나온 2015년 10월 말부터 매입·소각이 완료된 2018년 11월 말까지 삼성전자 주가는 52.5% 상승했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주주를 위한 기업가치 향상을 위해 주가 방어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7년 9.3조 매입 후 처음…3개월내 3조원 장내매입 소각
나머지 7조는 1년간 분할매입
삼성전자가 15일 예고 없이 대규모 자사주 매입을 공시한 것은 바닥을 모르고 하락하는 주가를 이대로 방치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삼성전자는 2015년과 2017년에 각각 11조4000억원, 9조3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소각 계획을 공개한 바 있다. 2015년엔 10월 말부터 소각이 완료된 2018년 11월 말까지 주가가 52.5% 상승했다. 2015년 삼성전자는 실적 부진에 시달리며 주가가 지지부진했지만 자사주 매입을 시작으로 주가가 랠리를 펼친 것이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삼성전자의 10조원 자사주 매입 발표는 위기감 속에서 일단 주가의 단기 부양 의지를 보인 것”이라며 “펀더멘털 변화는 단기적으로는 없겠지만 투자심리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4만전자’에…자사주 매입 특단 조치
지난 7월 최고 8만8800원까지 오른 삼성전자 주가는 14일 4만9900원으로 마감하며 고점 대비 43.8% 급락했다. 코로나19 공포가 극에 달한 2020년 6월 이후 4년5개월 만에 기록한 ‘4만전자’다. 530조원에 육박했던 시가총액 또한 4개월 만에 230조원 증발하며 300조원 아래로 떨어졌다.

이날은 자사주 매입 공시 전 장중 저가 매수세가 유입되며 7.21% 반등에 성공했지만 하락 폭에 비하면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평가가 나온다. 주가순자산비율(PBR)은 역사적 저점인 0.87배까지 떨어졌다.

증권가에선 이번 삼성전자의 자사주 매입을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14일까지 12거래일 연속 삼성전자를 순매도한 외국인의 투자심리를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은 “주주환원책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은 시장에서 기대하고 있었지만 10조원은 예상 밖의 큰 규모”라며 “외국인 매도세가 좀 진정된 상황에서 나와 수급상으로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평가한다”고 말했다. 실제 15일엔 외국인의 저가 매수세가 유입되면서 큰 폭으로 반등하는 데 성공하며 ‘5만전자’를 하루 만에 회복하기도 했다.
“주주환원책 이어져야” 시장 지적도
그동안 주가가 하락하는 상황에서도 침묵하던 삼성전자가 움직임을 보였다는 것 자체로 시장에 안도감을 줄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의 ‘반성문’ 이후에도 주가는 반등 없이 미끄러졌지만 경영진이 자사주를 산발적으로 사들인 것 외에는 회사 차원의 대응이 없었다. 하지만 실제적인 후속 조치가 나왔기 때문에 앞으로는 다를 수 있다. 박 연구원은 “삼성전자도 내부적으로 많은 문제를 수면 위로 꺼내놓고 인지하기 시작했다고 본다”며 “1c 나노, HBM4 등 개발에 집중하기 시작했으니 향후 기술적으로 빠르게 캐치업하겠다는 기대가 시장에 있다”고 말했다.

HBM 기술 격차를 빠르게 좁히고 있다는 분석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연말에는 엔비디아 H200에 HBM3E 8단이 들어갈 것으로 보이고, 내년 하반기에 또 12단 제품까지 들어가면 체질이 개선될 것”이라며 “이 같은 개선 방향성을 봤을 때 지금이 주가 바닥 구간이라고 판단한다”고 했다.

다만 일회성에 그쳐서는 주가 반등 모멘텀을 다시 잃을 수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하락기가 길었던 만큼 ‘액션’이 좀 더 계속돼야 한다는 시장의 기대가 반영된 것이다. 김민경 하나증권 연구원은 “업황 자체의 펀더멘털이 다 바뀐 게 아니고 거대한 회사가 하루아침에 경쟁력을 가지기도 힘들기 때문에 효과가 클지는 지켜봐야 한다”며 “주주환원 조치가 일회성으로 끝나면 큰 효과가 나타날 것 같지 않다는 우려도 있다”고 짚었다.

황정수/박한신/이시은/류은혁/박의명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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