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 97%가 최근 불거지고 있는 의대 정원 갈등과 관련해 의대 증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조장옥 서강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이 문제를 "의사들의 지대추구"라고 평가하면서 "대한민국 지식인의 자화상을 보여주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경제학자 97.4% "의대 증원 필요"
이날 한국경제학회가 경제학자 38명을 대상으로 '의료개혁'에 관해 설문한 결과 응답자의 97.4%가 의대 증원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73.7%는 교육현장의 상황을 고려해 2000명 미만을 증원하고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김현철 홍콩과학기술대 경제학과 교수는 "향후 의학 교육과 의료의 질을 걱정하는 것은 타당한 지적"이라며 "500~1000명 사이로 꾸준하게 늘리는 것이 더 나은 접근 방식"이라고 강조했다.23.7%는 의사 배출까지 6~10년이 걸리는 점을 고려해 정부안인 2000명 수준을 증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봤다. '의사 수가 과잉이니 증원은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은 1명(2.6%) 뿐이었다.
의대 증원을 결정하는 방식에 대해선 의료계와 비의료계 전문가, 정부로 구성된 위원회가 결정하는 것이 좋다는 응답이 51.4%로 집계됐다. 협의를 하되 정부가 결정해야한다는 의견도 45.9%를 차지했다.
의정 갈등 해소를 위해선 응답자의 절반(50%)이 '내년 증원은 정부안대로 추진하고, 2026년도 정원부터 재협의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곽노선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입시가 진행된 상황에서 중단하기에는 초래하는 혼란이 더 클 것"이라고 짚었다. 의대 증원 계획을 중단한 후 재논의 해야한다(26%)는 의견과 정부안대로 추진해야한다(24%)는 의견은 팽팽히 맞섰다.
필수의료 공백과 지역간 의료 수급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의대 증원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응답자의 84%가 '의대 증원과 함께 진료과목 간, 지역 간 수가 조정 등 경제적 유인 체계 개선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종민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원칙적으로는 시장 진입자(의사 수)를 늘리면 해결되는 문제이지만 장기균형에 도달하기 위해 시간이 많이 걸리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며 "취약한 진료과목과 지역을 보조하는 형태로 수가조정이 이뤄지면 더 빠른 불균형 해소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인구고령화에 따른 건강보험 재정문제에 대해선 보험료 인상이나 국고지원보다는 의료비 관리, 지출 효율화 등이 선행해야한다는 의견이 76%로 가장 많았다.
"정부 정책 강행에 국민 지지 잃었다" 비판도
경제학자들은 이번 의정갈등의 본질은 '의사들의 지대 추구'라고 지적했다. 앞서 조 명예교수가 지적한 것에 동의하는 의견이 많았다. 박종상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면허제도를 통해 의사 공급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경제적 지대가 존재하는 분야일수밖에 없다"며 "의대 증원이 인적자원 배분 효율화를 위한 인센티브 조정 차원이라는 점이 강조돼야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유종민 교수는 "의사들의 의대증원 반대 이유는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의료서비스 질 저하가 아니라 과점 약화"라며 "차라리 적정 이윤 보장에 대해 솔직한 대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이번 의정갈등을 '올바른 정책을 잘못 집행한 사례'로 꼽았다. 그는 "의대 증원은 초기 국민의 지지를 토대로 시작했지만 일방적인 정책 집행을 강행해 국민들의 지지까지 소멸됐다"며 "무모하게 정책을 밀어붙이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한수 교수는 "의사집단과의 대화는 필요하지만 궁극적으로 결정은 정부의 몫"이라며 "현 정부가 집행할 전략도 의지도 없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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