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에 열광하고 있지만 미국 이외 국가들은 깊은 상념에 빠져 있다. 트럼프의 전략은 비상식적인 미국만의 이기주의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다른 국가들의 이익을 침해하는 제로섬적인 성향이 강하다. 미국 내에서도 여전히 절반 가까이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았다. 행여 문제가 생기면 일거에 분위기가 반전될 수도 있다. 따라서 트럼프는 시간에 쫓기듯 빠르고 과감하게 정책을 펼칠 것이다.
특히 내년 상반기가 가장 중요할 것이다.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기보다는 목표 수익률을 낮게 가져가면서 새로운 전환에 대비해야 한다. 트럼프 2기 투자자들이 흔들리지 않고 지켜야 할 투자 의사결정의 원칙은 무엇일까.
투자의 골격: 역작용을 잘 살피자
미국의 법안 중에 일명 ‘BABA(Build America, Buy America)법’이 있다. 미국을 재건하는 데 소요되는 자재들은 미국 제품을 사용하라는 법이다. 다른 국가에 미국 제품을 사지 않으면(buy America), 헤어지자(bye)는 의미로 들린다. 트럼프 행정부는 세계를 향해 엄청난 강도로 압박을 가할 것이다. 수하(手下)로 들어오든지 아니면 독자 생존하든지 선택을 강요할 것이다. 그러나 강한 압박의 이면에는 허술한 측면도 상당하다.
바로 이 틈새를 잘 해석하고 대응해야 한다. 지난 11월 세계 주식 시장은 트럼프 행정부의 현실화로 공포에 떨었지만, 차근차근 트럼프 공약의 문제점을 찾는다면 어렵지만 대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깊은 학습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1. 반작용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미국이 야심 차게 밀어붙이는 패권 유지 정책들은 내년 상반기에 피크를 이룰 것이다. 2기 트럼프 행정부는 의회까지 장악했기 때문에 다음 의회 선거가 있기 전에 모든 정책을 밀어붙이려 서두를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반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미국의 전방위 공세에 자국 경제가 어려워진 유럽이나 중국이 전열을 재정비해 대항하는 것은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미국이 중국에 대한 보복 관세를 60%로 올리게 되면 중국의 미국 수출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해질 것이다. 유럽에도 압력을 넣어 유사한 수준으로 대중국 관세를 부과할 것이다. 이런 상황이 되면 심각한 내수 부진에 시달리는 중국은 수출마저 막히게 돼 저항이 불가피하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에 따르면, 대중국 관세가 60%로 상향되고 중국이 이에 반발해 보복에 나설 경우 미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0.43% 줄어들고, 중국은 무려 1.22%나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이럴 경우 중국뿐 아니라 미국도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 된다. 중국이 우회하는 베트남, 멕시코, 캐나다 등에도 무역 보복이 가해지면 북미 전체가 경기 침체에 빠질 수 있다.
중국은 2기 트럼프 정부 출범을 앞두고 경기 부양 정책을 조절하고 있다. 미국의 공세가 강화되면 중국도 배터리 원재료, 희토류 등의 수출을 통제할 것이다. 중국에 대한 원자재 의존도가 높은 일본, 한국의 관련 산업 피해가 커질 것이다.
10% 보복 관세를 미국 이외 모든 국가에 부과할 경우 그나마 독립성이 강한 유럽은 저항할 수 있다. 이미 애플, 구글, 메타 등에 엄청난 반독점 세금을 부과하고 있는 유럽은 더 강력하게 미국 기업을 압박할 것이다.
미국 내부의 반발도 예상할 수 있다. 트럼프에게 재정적 지원을 하는 미국 기술 기업 입장에서는 트럼프가 중국 비즈니스를 중단시킬 경우 반발할 수 있다. 바이든 정부에서도 테슬라를 비롯한 기술 기업, JP모건 등 금융 기업, 심지어 스타벅스까지 미국의 중국 견제에 반기를 들었고 중국 비즈니스를 확대한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미국만의 현상이지만 기술 기업의 슈퍼 파워는 정치를 넘어설 정도로 강력하다.
또 다른 관심은 한국·대만·일본 기업이 미국에 건설 중인 전기차, 반도체, 배터리 제조 설비에 대한 보조금을 철폐하는 대신 관세를 높여 미국에 제조 설비를 짓도록 유도한다는 공약이다. 이는 한국에 매우 중요하다. 미국이 고율의 관세 장벽을 치면 동아시아 배터리 업체들이 굴복해 예상대로 미국에 공장을 건설하게 될까. 실제로 그런 상황이 되면 우선 현재 건설 중인 배터리 제조 설비의 완공 시기가 상당히 지연될 것이다. 중국의 원자재 수출 중단으로 미국 전기차 산업이 고사할 수도 있다.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등 미국 자동차 업계와 노동자, 트럼프의 열렬한 지지자인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미국에 투자하는 기업들은 이런 상황까지 감안해 이미 제조 설비 건립을 늦추고 있다. 첨단 공정은 자국에서 생산해 미국의 압박을 우회하려고 한다. 반도체의 경우 미국에 제조 공장을 건설해도 이를 운용할 인력이 부족하다. 한국·대만 기업이 일종의 사보타주를 할 경우 트럼프 임기가 거의 지난 시점에서나 가동이 가능할 수도 있다.
뉴스는 점점 험악하게 나오겠지만 극단적으로 밀어붙이면 미국도 위험해진다. 결국 절제되고 실현 가능한 정책이 나오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 특히 신임 내각이 정책 경험이 거의 없는 ‘예스맨’ 중심이라는 점도 정책 혼선 가능성을 높인다.
트럼프 임기 중 중국을 굴복시킬 수 없고 장기전으로 가야 한다는 여론이 나올 가능성은 늘 열어 둬야 한다. 즉, 뉴스를 반대로 해석해야 할 경우가 많아질 것이다.
2. 과학기술이 우선이다
트럼프 정책의 실현 가능성을 낮추는 중요한 요인은 지금이 과학기술 발전의 중요한 분기점이라는 사실이다. 미·중 패권 경쟁을 좁혀 보면 과학기술 패권 전쟁이다. 양국 간의 전투는 과학기술, 특히 인공지능(AI)과 관련돼 있다. 중국의 AI 기술력은 미국에 거의 근접한 수준이라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예측이 쉽지 않다. 과학기술의 발전 상황에 따라 판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만일 중국의 파운더리 기업인 SMIC나 D램 업체인 CXMT가 TSMC나 삼성전자, 하이닉스에 근접한 기술력을 확보할 경우 트럼프의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투자자들은 중국의 반도체 기술력 발전을 각별한 관심을 갖고 살펴야 한다. 반도체 기업에 대한 투자를 넘어 판 전체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AI 기술에 이어 휴머노이드 등 로봇 기술의 확산, 뒤이어 양자 기술의 상용화가 대기 중이다. 미·중 패권 전쟁의 전선은 앞으로도 계속 확장될 것이다. 이미 제조 공정에 투입되는 로봇 가격은 2만 달러대에 진입했다. 예를 들어 휴머노이드가 2만5000달러(약 3000만 원대)일 경우, 미국 자동차 산업 기준으로 평균 6개월이면 투자 비용을 회수할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3. 미국 재정 상황을 늘 살펴라
관세를 늘린다고 미국 재정이 회복되기는 어렵다. 미국 전체 재정에서 관세가 차지하는 비율은 1.5%에 불과하다.(2024년 1~10월) 관세 수입을 아무리 늘려도 미국 재정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트럼프가 제시한 재정지출 계획을 보면 향후 10년간 재정적자가 7.5조 달러 늘어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더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현재 미국은 GDP가 29조 달러인 상황에서 정부 부채는 27.7조 달러로 GDP의 95%를 넘겼다(2024년 9월 말 기준 추정). 올해에만 국채 이자로 국방비보다 많은 1조 달러 이상 사용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도한 관세 부과로 물가가 상승하면 금리가 오르기 때문에 국채 이자 부담은 더 증가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미국 경제가 좋으면 달러 강세로 미국에 투자하고, 미국 경제가 나빠서 금리가 오르면 상대적인 고금리 때문에 미국에 투자하곤 했다. 때로는 금리가 싼 일본에서 차입해서(엔 캐리 트레이드) 미국 자산에 투자하기도 했다. 경기가 좋아도, 혹은 나빠도 미국에 투자하는 것은 바로 패권에 기반한 기축통화 효과 때문이다.
그런데 추가로 미국 국채 발행이 늘어난다면 이런 일상화된 투자 패턴이 바뀔 수 있다. 당장은 아니겠지만 미국 국채에 대한 선호도가 흔들릴 경우 투자의 중심이 달라질 수 있다.
이 장면에서 중요한 변화가 있다.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을 통해 달러 가치를 유지하려는 시도일 것이다. 미국이 달러와 연동된 스테이블 코인을 통해서 달러 가치를 보존하려 할 경우 가상자산 투자와 활용이 광범위하게 확산될 것이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를 스테이블 코인으로 대체 지급하면 미국의 금리와 경제 상황은 일단 안정을 보일 수 있다. 기존 글로벌 금융 생태계가 화학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면밀히 주시해야 한다.
4. 독점 빅테크를 주목하자
AI가 거의 모든 산업에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AI 도입에 열을 올리고 있는 빅테크 기업들은 독점적 성격이 강하다. 유럽에서 반독점 규제가 속속 나오면서 미국 내에서도 아마존 등에 대한 반독점 이슈는 점점 부각되고 있다. 심지어 AI 칩을 독점하고 있는 엔비디아에 대한 독점 규제 움직임도 감지된다.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서는 대외적으로 빅테크 기업들을 지원해서 미국의 이익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국내적으로는 독점에 대한 강한 거부감 때문에 딜레마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미국에서의 독점은 어떤 상황에서도 규제의 대상이었다.
거의 대부분의 국가에서 빅테크 규제 분위기는 강화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쿠팡, 배달의 민족 등에 대한 강한 규제가 빈번해지고 있다. 시가총액이 가장 큰 빅테크 기업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시각은 한국이나 미국 시장 모두에 큰 영향을 줄 것이다.
반대 상황도 있다. 자율주행(FSD) 자동차의 상용화는 안정성과 관련된 규제의 장벽이 높다. 이미 기술은 상용화 단계에 도달했지만 규제 해제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반면 중국의 자율주행차 상용화는 오히려 미국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이다. 그렇다면 과학기술 자문과 정부 효율화의 선봉장인 일론 머스크 입장에서는 자율주행차의 규제 해제를 비롯한 AI와 관련된 많은 규제 해제를 예상해 볼 수 있다. 이럴 경우 AI의 보급 속도는 더욱 빨라질 수 있다.
시장 대응: 겸손·유연·민첩함이 중요하다
철학자 안토니오 그람시는 ‘낡은 것이 소멸해 가고 있는데, 새로운 것이 아직 태어날 수 없는 상황의 권력 부재 위기’를 인터레그넘(interregnum)이라고 표현했다. 원래 뜻은 정치적 공백 상태를 의미하는 말인데 현재 시장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는 표현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은 효용이 낮아졌다. 미래의 변화는 다가오지만 트럼프가 펼칠 상황을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한다.
확정적인 것은 미국의 이해관계뿐이며 많은 분야가 유동적으로 바뀔 것이다. 모든 것의 변화 가능성을 열어 둬야 한다. 사회적 변화가 개인의 변화를 강요하는 상황에서 과거 방식은 전혀 쓸모가 없을 것이다. 당분간은 미국이 만드는 ‘유동(流動) 사회’ 속에서 살아야 한다. 불편하지만 과거의 상식과 결별하고 유연하게 사고해야 하는 인터레그넘의 우울한 신세계가 될 것이다.
어떤 전환이라도 받아들이는 겸손함과 유연함, 그리고 대응은 민첩하게 해야 한다. 기존의 투자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미다. 또한 현기증 나는 변화 속에서 투자뿐 아니라 정신 건강도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
5. 뉴스보다는 원칙이 중요하다
트럼프의 공약은 허술하거나 선거용 ‘공약(空約)’의 비중이 높다. 또한 경험했듯이 트럼프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걸러지지 않은 많은 뉴스를 내보낼 것이다. 중심을 잡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투자가들은 정보를 분석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데 있어 냉정한 객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통상 투자에서 실패하는 심정적 요인은 객관성보다는 자기 확신, 즉 자신의 소망에 따른 투자에서 비롯된다. 트럼프 시대에는 객관성을 약화시키는 뉴스와 정보가 양산될 것이다. 늘 한발 물러서서 큰 그림으로 세계와 미국을 바라봐야 한다. 여기서 핵심은 미국 패권 강화라는 미국인들의 생각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6. 변동성 극대화에 대비하라
투자는 추세가 형성되면 아주 쉽다. 그러나 새로운 트럼프 시대는 공교롭게도 경기 하강 국면에서 글로벌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는 시기다. 빠른 기술 진보로 기업의 흥망성쇄가 순식간에 발생할 것이다. 또한 코로나19 당시 풀어 놨던 자금을 거둬들이는 시기이기도 하다. 미국 재정 상황에 따라 미국 금리가 빠르게 변동하면 다른 국가들의 금리와 환율 변동도 심해질 것이다.
주식 시장에서 가치투자, 장기투자는 가장 중요한 원칙이고 앞으로도 지켜질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임기 전반부에서는 ‘무엇이 가치인가’에 대한 관점의 변화가 예고된다. 그 결과 장기적 시장 예측이 보다 어려워질 것이다. 시장을 주도했던 매그니피센트 7(M7) 등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투자도 한계에 도달했다는 시각이 만만치 않음을 감안해야 한다. 목표 수익률을 낮게 잡고 기민하게 대응해야 한다.
투자의 달인인 워런 버핏은 지금 현금 비중이 가장 높은 상황이라고 한다. 그는 모든 것이 유동화되면서 높은 변동성이 예상되기 때문에 한발짝 뒤로 물러서고 있는 것이다. 내년 상반기까지 큰 그림은 여전히 안갯속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긴 호흡을 유지하면서 달라진 상황을 객관적으로 해석한 후 투자에 나서야 한다.
7. 자산 배분의 틀이 바뀐다
통상 미국 경기가 조정세를 보이면 글로벌 투자 자금은 미국 밖으로 빠져나온다. 그러나 이번 국면에서는 분산투자나 자산 배분이 쉽지 않을 것이다. 전반적인 글로벌 정치 경제 구조가 미국에 의해 새롭게 규정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가 침체될 경우 여타 지역 경기는 더 어려워질 것이다. 보편 관세가 모든 국가에 적용되면 미국 이외 국가의 경기 침체가 더 심화될 수 있다.
유럽 등 선진국 시장은 대부분 일본형으로 가고 있고, 러시아를 비롯한 구공산권은 원자재 가격 약세로 숨쉬기 어려울 것이다. 중국은 미국과의 전투와 국내의 디플레이션 분위기로 힘든 시기에 돌입할 것은 자명하다.
따라서 미국과 미국 이외 지역 간 투자 로테이션은 설령 나타난다고 해도 강도는 매우 약할 것이다.
홍성국 혜안리서치 대표·전 미래에셋대우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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