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짚신장수·우산장수 자식 둔 심정

입력 2024-11-19 18:12   수정 2024-11-20 00:04

얼마 전 공공기관장으로서 부임 후 첫 서울시의회 행정감사 자리에 섰다.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피감 기관장이 의원 질의에 즉답하지 못하면 호되게 질책과 면박을 받아야 하는 국회 국정감사 현장을 뉴스를 통해 많이 봐와서다. 마음 단단히 먹고 임했는데, 뜻밖에 따뜻한 마음이 담긴 질의를 받고 감동했다.

자녀를 키운 경험이 있는 어느 여성의원이 필자에게 “재단 직원 퇴사율이 타 기관보다 높다”며 “법인명이 여성가족재단인데 여성 직원 재직기간이 길지 못하다는 게 말이 안 되는 만큼 여성들이 오래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질의했다. 시민 편의를 위해 최선을 다해 일해야 하지만 대표는 직원의 일·가정 양립도 잘 챙겨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재단의 아픈 부분을 꼬집은 것이지만, 재단 구성원의 고충을 잘 알고 돕고 싶다는 시의원의 숨은 뜻이 읽혀 가슴 따뜻함을 느꼈다.

‘예산과 인력의 한계’라는 공공기관의 오래된 변명 뒤에 숨지 않겠다며, 취임 후 야심 차게 일을 추진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직원의 워라밸을 희생하며 벌인 일의 상당수가 시민의 양육환경 개선이었다. 중소기업들이 육아휴직 및 유연근무제, 남성 휴직 장려제도를 활용하면 대체인력 수당 지급 같은 이익을 주는 ‘서울 중소기업 워라밸포인트제’, 국민은행과 공동으로 소상공인 출산·육아 지원 사업을 하는 ‘민관 합동 아이돌봄서비스’ 등이다.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에 놓여 정부의 각종 출산지원책에서 빠져 있는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인도 육아휴직을 가는 직원을 응원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다.

저출생 해결을 위해 우리는 ‘혁신적’이고 ‘파격적’인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여러 사업의 성과가 돌아오니 정말 보람된 순간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 직원의 워라밸은 누가 지켜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빠졌다. 재단의 양육환경 개선 사업이 인기를 끌고 폭발적으로 지원자가 몰리면 정작 이 과정에서 직원들의 업무량이 급증하는 현상은 피할 수가 없다. 저출생 육아 지원사업을 하는 재단에서 ‘등잔 밑 그늘’ 같은 일이 생긴 셈이다.

전체 직원 중 여성 직원이 90% 이상인 우리 재단에서 30대 중간관리자가 돼 가장 활기차게 일하는 시기에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가는 것은 권장하며 축하할 일이다. 구성원이 출산과 양육 문제로 휴직하면 그 공백을 슬기롭게 메우는 일은 대표인 내가 할 몫이다. 비가 오면 ‘우산장수 아들이 오늘 장사가 잘되겠네’ 하며 희망에 차고, 맑은 날엔 ‘짚신장수 아들의 짚신이 잘 팔리니 두 배로 행복하다’고 되뇐다는 어느 엄마의 우화처럼 저출생 문제에 기여하는 우리 구성원의 공백을 반기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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