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표에 대한 1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될 경우 민주당은 당시 보전받은 선거비용 434억원을 토해내야 하는 위기 상황에 봉착했기 때문입니다. 대법원서 형이 확정된다면 민주당으로부터 혈세 434억원을 고스란히 돌려받을 수 있는 걸까요.
민주당 측에서는 "이재명 대표 개인만 아니라 민주당까지 폭삭 망하게 만든 판결을 했다. 434억원을 어디서 만드냐, 건물 팔고 모금해도 만들기 어려울 것"(우상호 전 민주당 비대위원장)이라며 우려를 표했지만, 호들갑을 떨기는 국민의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민주당이 반환해야 할 수도 있는 선거 비용 434억원을 '먹튀(먹고 튄다)'할 수 있다면서 방지 2법(공직선거법·정치자금법 개정안)을 내고 당론으로 추진하기로 한 것입니다. 설사 이 대표의 1심이 그대로 확정되더라도, 민주당 측이 434억원을 반환하지 않고 도망갈 수 있는 '꼼수'를 우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경 혈세 누수 탐지기(혈누탐)팀은 이들 80명의 이름과 소속 정당까지 공개하고 싶었으나 이는 개인정보라 불발됐습니다.
공직선거법이 선거사범에 대해 선거 보전 비용 반환을 명확하게 명시하고 있음에도 일부 정치인들이 이처럼 '배 째라'는 식으로 버틸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공직선거법 제265조의 2(당선무효된 자의 비용반환) 에 따르면, 당선이 무효로 된 사람이 당선 무효에 해당하는 형을 확정받을 경우, 반환·보전받을 금액을 반환하도록 하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경우, 대통령선거의 정당추천후보자는 그 추천 정당이 반환해야 합니다.
정당과 후보자에게 주어지는 반환 기한은 고지를 받은 날로부터 30일인데, 이 기한이 넘어가면 공은 국세청으로 넘어갑니다. 공직선거법에는 '납부기한까지 당해 정당·후보자가 납부하지 아니한 때에는 당해 후보자의 주소지를 관할하는 세무서장에게 징수를 위탁하고 관할세무서장이 국세체납처분의 예에 따라 이를 징수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선거보전금 반환의 의무를 진 선관위가 징수를 국세청에 위탁하는 것은 관련 법령에 징수 절차가 없기 때문입니다. 국세청 관계자는 선거보전금 미반환자 80명과 관련해 "한명 한명에 대해선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재산 상태에 대해 담당자가 파악하고 있을 것"이라며 선거보전금이 미반환된 이유에 대해선 △압류할 재산이 없다든가 △압류하더라도 선순위 채권이 많아 집행을 못 하는 경우 등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미반환 선거보전금이 '국세'는 아니지만, 미납 추심 조치는 국세와 같다는 것입니다.
이 관계자는 "징수 의무는 여전히 선관위에 있고, 실제로 납부 역시 선관위 쪽으로 이뤄진다"고 덧붙였습니다.
선관위와 국세청의 답변을 들으며 든 생각은 '어느 쪽도 내 일이라고 여기지는 않는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구조적으로 누구에게도 명확한 징수의 책임을 지우지 않고 있는 허술한 법령 때문으로 보입니다.
다만 무엇보다 더 경악스러운 것은 '국민의 선택'을 갈구하던 이들이 법을 무시한 채 버티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중앙선관위는 지난 15일 올해 4분기 경상보조금 123억7000여만원을 7개 정당에 지급했다고 밝혔습니다. 22대 국회 의석수에 따라 170석인 민주당이 54억3344만9680원을, 108석인 국민의힘이 52억1657만3420원을 받았습니다. 분기마다 지급되는 경상보조금으로 올해 지급된 국민 혈세는 총 약 총 501억8900만으로 집계됐습니다.
정당에 대한 국가보조금 제도는 1980년에 군사정권의 산물로 도입된 이후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데, 보조금의 액수는 물가와 연동돼 매년 인상되었습니다. 보조금의 액수나 범위, 지급기준 등을 입법기관인 국회가 결정기 때문에 사실상 '셀프 인상'인 셈이죠.
우선 정당이 '사실상 해산에 이르는 경우'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동안 선거철마다 생겨났다 금세 사라진 정당들은 수없이 많지만, 이들에게 지급됐던 보조금이 돌아온 사례는 단 하나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사실상 존재 이유가 사라진 뒤에도 '보조금'을 노리고 궁색한 활동을 이어가는 정당들이 눈에 띕니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평화당과 바른미래당, 대안신당이 합쳐져 만들어진 '민생당'의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2020년 2월 창당한 민생당은 현역 의원 20명으로 창대하게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총선에서 단 한 석도 건지지 못했고, 이후 박지원·손학규·정동영·천정배 등 주요 인사와 실무진 대부분이 당을 나가며 사실상 소멸했습니다.
민생당은 그런데도 2020년부터 2024년 1분기까지 경상보조금과 선고보전금을 합쳐 총 157억여원을 국민 혈세로 지원받았습니다. 활동을 멈추고도 국민 세금으로 정치 활동 지원을 받은 것입니다. '의석이 없어도 총선에서 2% 이상 득표한 정당은 보조금 총액의 2%를 배분받는다'고 한 정치자금법 27조2항 덕분입니다. 민생당은 21대 총선에서 지역 및 비례 평균 2.08%를 득표했습니다.
민생당은 22대 총선에서 단 한 명의 후보자도 내지 못하고, 비례대표 득표율은 0.02%(6615표)를 기록했습니다. 그제야 국민 혈세가 민생당에 지급되지 않게 됐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 지급된 '억'소리 나는 보조금이 그동안 어떻게 쓰여왔는지는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은 여전히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실제로 정당이 해산하는 경우에도 국고로 돌아오는 정당 보조금은 '0'에 수렴합니다. 해산한 정당의 잔여재산이 국고로 환수된 경우는 2015년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의해 해산했던 통합진보당의 사례가 유일합니다.
정당법 제 48조에 따르면, 정당이 자진 해산한 때에는 그 잔여 재산은 당헌이 정하는 바에 따라 처분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야권 일각에서 민주당이 434억원 반환 책임을 져야 할 경우, 당을 해산하는 '극약 처방'까지 고려하는 것은 이런 정당법의 허점을 이용한 것입니다. 민주당 당헌 제113조에는 '당이 해산 기타 사유로 소멸하였을 때에는 당의 재산과 부채는 소멸 당시의 당무위원회 또는 당무위원회가 설치한 수임 기구가 청산위원회가 되어 이를 청산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민주당의 재산이 국고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정치적 고려에 의해 현실화할 가능성은 작지만, 법을 이용하고자 마음만 먹는다면 '분당 후 재창당'하면 그만이라는 뜻입니다.
합당이 불발되고 보조금 꼼수 수령 비판이 일자 개혁신당은 보조금 반납 의지를 밝히면서도, 현행법상 규정 미비를 근거로 반환이 불가하다면서 입법을 공언했지만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국고보조금 중 1억6555만원을 쓴 사실이 지난 7월 뒤늦게 알려져 한 차례 더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개혁신당은 정당 국고보조금 폐지를 총선 때 공약으로 발표한 적이 있는데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범죄 수익도 강제로 환수하듯이 정치인이나 공당에서 문제가 생기면 환수할 필요가 있다"며 "만약 반환하지 않으면 선출직에 출마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정당에게 페널티를 부과하는 등 제약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슬기/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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