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적으로 청어는 ‘네덜란드를 일으킨 생선’으로도 불린다. 13세기만 해도 청어는 한자동맹 200년의 전유물이었다. 15세기 들어 기후 변화로 청어 어장이 네덜란드 앞바다인 북해에 형성되자 정부는 천금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국가적 역량을 청어잡이에 집중하기로 결심했다. 청어잡이 특수 어선을 만들고, 잡힌 청어는 선상에서 가공 염장하는 기술을 개발해 신선도를 높였다. 정부는 함대를 동원해 청어잡이 선단을 호위했고, 소금과 나무통 재질, 그물코까지 법으로 정해 양과 품질을 엄격하게 관리했다.
이내 네덜란드는 200년 카르텔을 깨고 청어전쟁에서 승리를 거뒀다. 청어잡이 선박 연구에 몰두하다 보니 네덜란드의 조선 경쟁력은 영국을 압도했다. 무역량이 늘자 해운업이 융성했고 이를 뒷받침한 금융업·보험업이 발전했다. 네덜란드 국민 절반은 청어산업 일자리를 갖게 됐다.
15세기 네덜란드에 21세기 대한민국 반도체를 투영해 보는 전문가들이 있다. 지금까지 잘해왔던 대한민국 반도체에 역량을 더 집중해 인공지능(AI), 자율주행, 헬스케어 등의 시대를 맞아 한국 경제를 크게 일으켜 볼 호기가 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에서 국가전략산업으로 관심을 기울이고는 있지만, 그 지원책은 경쟁국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반도체협회가 시뮬레이션한 결과에 따르면 반도체 팹 20조원을 투자할 경우 일본에서는 10조8000억원의 인센티브(보조금, 세액공제 등)를 받고, 미국에서는 5조5000억원을 받는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에서의 인센티브는 일본의 10분의 1, 미국의 5분의 1 수준인 1조2000억원으로 계산됐다.
경직적인 근로시간도 문제다. 반도체는 오랜 기간 집중력 있게 연구개발하는 것이 필요한데, 우리의 주 52시간 제도는 이를 가로막고 있다. TSMC의 대만은 주 40시간 근무제를 채택했지만 노사 합의에 따라 하루 근무시간을 늘릴 수 있다. 엔비디아는 근로시간 제한보다 오히려 초과근무에 대한 보상을 하고 있다.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일부 고소득 산업에 대한 예외)’ 필요성이 반도체업계에서 흘러나오는 이유다.
최근 여당은 인센티브 확대, 근로시간 유연화 등을 골자로 하는 반도체 특별법을 발의했다. 경쟁력 있는 산업을 더 지원해 국가대항전에서 승리를 거둘 것인지, ‘반도체=대기업 특혜’라는 프레임에 갇힐 것인지 약속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과메기 철보다 중요한 반도체 제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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