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정치적 불확실성은 높아지고 있지만, EU와 미국의 ESG정책이 무역 장벽으로 작용하는 등 기업들이 마주하는 대외 정책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ESG라는 용어가 대체되더라도 그 핵심 정신은 살아남을 것입니다.”
지난 11월 20일 '2024 ESG 경영혁신포럼'이 한국경제신문 다산홀에서 개최됐다. 국내 유일의 ESG 전문 매거진 <한경ESG>가 ‘위기와 도전, 2025 경영 전략’이라는 주제로 마련한 이날 행사는 주요 기업 ESG 담당자는 물론 대학 및 로펌, 컨설팅사까지 ESG 관련 종사자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매우 열띤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하영춘 한국경제매거진 대표는 환영사를 통해 “기업들이 저성장 시대를 돌파하고, 지속가능경영을 강화하는 데 이 포럼이 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라며 “변화의 순간에 기업이 반드시 살펴야 할 중요한 의제를 던지는 <한경ESG>가 앞으로도 여러분의 동반자로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기조연설자로는 문성후 한국ESG학회 부회장 겸 법무법인 원 ESG센터장(미국 뉴욕주 변호사)이 나섰다. 문 센터장은 트럼프 당선으로 인한 미국에서의 정치환경 변화에 중점을 두고 트럼프 시대 ESG경영의 방향에 대해 강연했다.
트럼프는 석유산업 확대에 따른 에너지 독립을 기반으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MAGA)’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다. 문 센터장은 “미국의 원칙과 실행을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라며 “원칙적으로 트럼프의 반 ESG정책은 굉장히 급격할 것으로 생각되고, 기업은 미리 이에 대해 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문 센터장은 대통령 선거는 물론 미 상하 양원도 공화당이 장악하는 이른바 '레드 스위프(Red Sweep)'에 주목했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지배하는 연방정부와 주 정부가 분리돼 있는 미국의 제도적 토대가 미국의 급브레이크를 완화해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았다. 예컨대 빅테크들이 몰려 있는 미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연방정부와 구별된 독립적인 기조의 정책을 여전히 견지하고 있다.
문 센터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와 기후정책을 실용적 측면에서 재검토하는 반면 유럽은 미국의 ESG 리더십 퇴조를 적극적으로 이용할 것으로 보인다”라며 “우리 기업은 두부처럼 단단하면서도 유연하게 대응하고, 연합 행동을 통해 많은 기관과 함께 협업하는 형태로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ESG라는 용어에 많은 공격이 가해지고 있지만, 다른 용어로 대체되더라도 그 핵심은 살아남을 것"이라며 "트럼프도 기업의 생산성이나 실적이 약화되는 것은 바라지 않기 때문에 ESG 정책을 선택적으로 적용하게 될 텐데 여기에 대해서도 매우 민첩하게 대비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이어진 토론에서는 문성후 센터장을 좌장으로 하여 문두철 연세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 정우용 한국상장회사협의회 부회장, 양은영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실장, 안상희 대신경제연구소 지속가능센터장이 참여했다.
문두철 연세대 교수는 기조연설 내용처럼 미국의 정책 급선회가 이어지더라도 연방 차원과 주 차원을 분리해서 봐야 할 필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이와 함께 대외적인 측면에서 인권과 노동 규제 수준이 지금보다 더 높아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문 교수는 “글로벌 ESG 정책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기는 하지만 우리 기업들이 마주하는 정책에는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며 “다만 미국과 EU 정책방향이 상이해지면서 이 정책을 분석하고 각 시장에 맞게 유연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환경 및 기후 규제 완화를 기회로 활용하면서 인권 및 노동 문제를 대비하고, EU 시장에서는 공급망 관리와 함께 탄소 감시 요구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피력했다.
정우용 상장협 부회장은 글로벌 공시 의무화 트렌드에 따른 우리 기업의 공시 부담에 대해 언급했다. 정 부회장은 “이미 현재의 자율공시에도 거짓공시일 경우 매매거래가 정지되는 등 패널티를 안고 있는데 ESG 공시가 법정공시가 되면 기업의 부담이 너무 높아진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기후변화는 공동으로 대응해야 될 부분이니 아예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은 하지 않지만, 현실에 맞게 고쳐나갈 필요가 있고 기업들이 너무 큰 부담은 느끼지 않도록 했으면 한다"고 언급했다. 향후 전망으로는 “고탄소 산업은 점점 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에 축소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국가 경쟁력을 위해서라도 저탄소 기술은 집중 개발해야 할 것”이라고 보았다.
양은영 코트라 실장은 “미국이 ESG 정책을 계속해 나갈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ESG라는 명칭은 아니더라도 이런 방향의 규제나 법안들이 외국 기업이나 외국 제품을 막는 데는 분명히 더 강화되어 사용될 것이라는 점은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다”고 피력했다.
양 실장은 “유럽의 ESG 정책뿐만 아니라 미국의 환경 및 노동 인권 규제들이 단순히 최종기업뿐만 아니라 공급망과 협력업체들에게도 동참을 요구하고 있고, ESG는 아름다운 가치로 출발했지만 공동체 차원에서 법제화되면서 안타깝게도 우리 수출기업에게는 무역 장벽이나 투자 장벽이 될 수밖에 없다”며 “이 같은 흐름은 이미 기업에게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의무적인 투자의 개념으로 실행해야 할 것”고 설명했다.
안상희 대신경제연구소 지속가능센터장은 “기업체 공급망에 요구되는 탄소배출량 관리와 관련 탄소배출권 가격이 중요한데, 앞으로 한국에서도 탄소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 약 50~100달러 정도까지도 전망된다”라며 “탄소가격이 급격히 높아지면 앞으로 탄소배출권 구매 가격이 기업의 영업이익과 맞닿아 있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안 센터장은 “앞으로 EU의 탄소국경세가 들어오면 철강이나 화학, 시멘트 등 주요 업종은 글로벌 정치환경이나 트렌드와 무관하게 탄소가격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이를 위해서는 기업의 탄소데이터 관리를 위한 내부 통제 프로세스 구축이 중요하다. 이를 관리하기 위해 탄소정보공개 프로젝트(CDP)에 가입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토론에 이어 공급망, 지속가능성 공시, 2025 ESG트렌드를 주제로 특강이 이어졌다. 먼저 ‘공급망 지속가능성 전략’에 대해 강연한 류종기 EY한영 상무는 기업에 지속가능성과 회복탄력성을 강화하는 대응을 통해 가시성과 민첩성을 높일 것을 주문했다.
류 상무는 “공급망을 지원하는 조직 구조를 재구성하고, 업무 표준화를 통한 탄력적인 인력 지원, 기업의 문화 변화, 공급망 운영 비용 절감과 수익 최적화를 달성하는 기업 조직 양성 등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재 공급망 관리가 비용 최적화에만 초점이 맞춰지고 비자동화되고 경직적이라면, 앞으로는 클라우드를 통한 민첩하고 네트워크화된 생태계가 조성되고, 앞으로는 인공지능과 자율주행까지 아우르는 자율 실행 공급망으로서 나아가도록 지원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은경 한국회계기준원 지속가능실장은 ‘지속가능성 공시를 활용한 ESG 경영 개선’에 대해 강연했다. 김 실장은 “현재의 한국 지속가능성 공시 기준은 국제정합성과 국내 산업의 특성을 고려한 수용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제정됐다”라며 “기업은 ESG 공시를 통해 경영활동의 투명성을 높일 뿐 아니라 선제적으로 리스크 관리를 할 수 있으며, 자본조달 비용을 낮추고 기업가치를 제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실장은 “현재 마련된 공시 초안에 많은 글로벌 투자자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라며 “기업이 부담을 느끼는 스코프3 공시나 내부탄소가격 등은 기업이 선택하여 공시할 수 있게 하였고, 향후 피드백을 반영해 구체적인 일정을 확정해 나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 강연자인 곽승현 ERM 파트너는 '2025년 핵심 ESG 키워드'로 △AI 붐에 따른 에너지 수요 증가 △그린워싱이 촉발한 기술 개발 △적극적인 기후적응 전략 시행 △밸류체인 탈탄소화 강화 △효과적인 실사에 대한 요구 △자연자본 운영 전략화 등 다섯 가지를 꼽았다.
곽 파트너는 “기업이 높아지는 평균 기온에 맞춰 적극적인 기후 적응 전략을 시행해야 하고, 밸류체인 탈탄소화의 높아진 압력을 소화해 내야 한다”라며 “플라스틱 관련 정책과 규제는 강화될 것으로 전망되며, 지속가능한 패키징 개발 및 적용을 확대해 나갈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포럼의 상세 내용은 <한경ESG> 12월호에서 살펴볼 수 있다.
구현화 기자 kuh@hankyung.com │ 사진 서범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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