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어 판매 '영역침범'?…노량진 상인간 갈등 증폭

입력 2024-11-22 17:44   수정 2024-11-23 00:56

22일 오전 8시 서울 노량진수산물시장. 소매상 박모 씨는 새벽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도매상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손님들이 다 저쪽으로 가니 장사가 될 리가 없다”며 혀를 찼다. 최근 SNS를 통해 ‘노량진 경매시장에서 싸게 횟감 사는 법’이 공유되며 소매상 대신 도매상에서 수산물을 사는 손님이 크게 늘어난 탓이다. H상회 김모 사장도 “1년 새 수산물 가격이 크게 뛴 데다 일반 손님까지 뺏기니 소매상은 말라죽을 판”이라고 하소연했다.

노량진수산시장에서 도매·소매상인 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 중간 도매상이 일반 소비자에게 활어를 팔기 시작하자 소매상들이 반발한 것이다. 소매상의 집단행동이 나타나자 공정거래위원회가 나섰을 정도다. 소매상으로 구성된 A상우회는 지난 8~9월 250여 개 회원 점포에 소매영업을 하는 중도매상과의 거래를 금지하고, 해당 중도매상에서 소비자가 사 온 생선도 손질해주지 말자는 지침을 내렸다가 지난 5일 공정위로부터 부당공동행위 및 사업활동 방해 경고 처분을 받았다.

소매상들은 도매상에서 떼온 수산물을 소매상(판매상)이 손님에게 파는 노량진의 오랜 거래 관행이 코로나19를 계기로 무너졌다고 설명한다. 차덕호 노량진상인회장은 “코로나19 시기에 일부 중도매상이 도매와 소매를 겸업하기 시작했는데 요즘 소매상보다 20~30%가량 싸게 횟감을 팔고 있다”며 “별도로 임차료를 내지 않고, 인건비도 적게 드는 도매상이 소비자에게 직접 활어를 파는 건 소매상에게 죽으라는 얘기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도매상들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지 않냐며 반박한다. 도매상 A씨는 “근본적으로 경기가 나빠져 생긴 문제”라며 “SNS를 보고 찾아온 손님을 물리칠 수 없는 노릇 아닌가”라고 했다. 노량진수산시장 내 도매상은 157명으로, 이 중 20%가량이 도매 영업시간(오전 1~8시) 이후에는 소매를 겸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량진수산시장을 관할하는 수협도 난감한 상황이다. 수협중앙회 관계자는 “도매상을 제지하면 소비자가 값싸게 수산물을 살 기회를 빼앗는 격”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소매상 고사 위기를 우려하면서도 수산물 거래 시장이 바뀌는 과정에서 벌어진 갈등이라고 설명한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소매상들도 회를 무료로 떠주거나 밑반찬을 제공하는 등의 차별화한 방법으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안정훈/김다빈 기자 ajh632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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