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경기도 화성아트홀에서 한예종 K-Arts 무용단이 공연한 '갈라 오브 드림스(A Gala of Dreams)'는 말 그대로 한국 발레계의 꿈같은 무대였다.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천재 안무가 조지 발란신(1904~1983년)의 작품이 갈라 무대의 절반을 차지했기 때문.
발란신 트러스트는 안무가 사후인 1987년 조직돼 발란신의 작품을 관리하는 단체다. 최근 이곳은 한예종에 '성조기 파드되'와 '차이콥스키 파드되'를 허가한 이래 올해부터는 '주제와 변주곡(1947년 초연)' 그리고 '타란텔라(1964년 초연)'까지 무대에 올리도록 했다. 발란신의 작품은 돈을 많이 낸다고 해서 가져올 수 없다. 전세계 발레단에서 발란신의 레퍼토리를 원할 때 엄격한 심사를 거치고, 허가의 의미로 레피티터를 보낸다. 레피티터에 드는 비용도 IP 이용료도 발레 업계에선 매우 높은 수준이라 전해진다.
이번 갈라 공연은 국내에서 비교적 새롭게 느껴지는 발란신의 레퍼토리를 보여줬단 점, 그리고 이를 학생 발레단이 주도했단 점에서 여느 발레 갈라와는 확실한 차별점이 있었다.
'타란텔라'는 이탈리아 나폴리 지방의 민속 무곡과 무용을 의미한다. 여기에 발란신이 발레를 입혔다. 이탈리아 남부 사람들의 열정적이고 쾌활한 대화와 몸짓을 발레의 움직임으로 전한 것. 이렇게나 극적으로 에너지를 끌어올린 무대를 발레 공연에서 만난 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성조기 파드되'는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발란신이 새로운 조국에 대한 헌사로 만든 작품이다. 성조기가 가진 애국에 대한 여러 의미를 모티프로 절도 넘치는 2인무가 이어졌다.
내년 상반기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에 입단하는 전민철이 주축이 되어 보여준 '주제와 변주곡'은 이번 공연의 대미를 장식했다. 이는 차이콥스키가 작곡한 4개의 관현악 모음곡 중 하나인 '제3번 G장조'의 마지막 악장을 바탕으로 안무된 작품인데, 서양의 무도회(ball)를 연상케 했다. 무대를 관통하는 플롯은 없지만 제 1변주곡에서 12변주곡까지 전개되는 춤이 이야기를 대변했다. 우아한 클래식 발레의 움직임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움직임을 생동감있게 조절하는 활력, 자유로움도 느낄 수 있어 미국인이 된 발란신이 러시아 발레에 대한 오마주로 이 작품을 창작했단 사실을 되새길 수 있었다.
'주제와 변주곡'은 내년 1월 한예종 출신 세계적인 발레 무용수들이 모여 공연하는 <발레의 별빛>에서도 공연될 예정이다. 김선희 교수에 따르면 한예종 졸업생이자 현재 아메리카발레시어터(ABT)의 솔리스트로 활동중인 박선미가 이달 초, 이 작품으로 함께 무대에 오를 발레리노 전민철과 '주제와 변주곡'을 연습했다. 뉴욕으로 돌아간 박선미는 레피티터인 디아나 화이트(전 뉴욕시티발레단 솔리스트)에게 작품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을 전수받고 있다.
이해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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