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인사이트] 망분리 규제 완화, 금융 산업 '카이로스' 로 여겨야

입력 2024-11-24 16:56   수정 2024-11-25 00:08


한국 금융산업은 중요한 변곡점에 서 있다. 디지털 전환과 인공지능(AI) 도입이 가속화하면서 망분리 규제 완화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금융산업에서 컨설팅을 해온 필자는 오랜만에 찾아온 현재의 이 모멘텀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고 반갑지만 동시에 우려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컨설팅 현장에서 접한 금융회사의 현실적 어려움과 풀어야 할 숙제의 난도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혁신 더딘 韓 금융사들
한국의 많은 금융사는 두 가지 장벽에 막혀 있다. 첫째는 망분리 규제로 외국산 클라우드 서비스나 소프트웨어 솔루션의 도입을 시도할 기회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한국 금융사들은 글로벌 금융사들이 활용하는 다양한 디지털 인프라와 기술을 자유롭게 도입하지 못한다. 그 결과, 혁신에서 뒤처지고 있다. 둘째는 이런 규제를 핑계로 금융사들이 디지털 혁신을 차일피일 미뤄왔다는 것이다.

글로벌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BCG코리아는 한국의 디지털 역량을 배우고 싶어 하는 유수의 글로벌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들로부터 노하우 전수나 성공 사례 요청을 많이 받곤 한다. 디지털 강국으로 알려진 한국이기에 금융사들의 디지털 혁신, 특히 AI와 클라우드 적용 정도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런 자리에서 공유할 만한 사례나 성공 노하우에 대해 해줄 말이 없어 씁쓸해질 때가 많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는 대기업의 빠른 디지털 전환으로 재택 중에도 업무 보고나 경영진과의 소통 과정이 문제없이 원활하게 진행되는 것을 보고 매우 인상 깊었던 적이 있다. 반면, 금융사들은 이런 환경 변화에 전혀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있었다.
글로벌 금융사들 ‘영토 확장’ 비결은
최근 글로벌 금융사들은 ‘임베디드 금융’(비금융사가 본업 외에도 자사 플랫폼을 통해 금융 기능을 내재화해 금융 서비스를 제공)이나 커머스(결제 플랫폼)로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금융사가 금융뿐 아니라 플랫폼의 힘을 발휘해 핀테크 업체와 커머스업에도 침투 중이다.

미국 씨티은행은 핀테크 기업 와일드파이어에 투자해 자사 고객을 위한 쇼핑 경험을 혁신했다. 와일드파이어와 협력해 출시한 ‘씨티숍’(Citi Shop)을 통해 씨티카드 사용자는 별도의 번거로움 없이 자동으로 쿠폰, 캐시백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이를 통해 씨티은행은 사용자 경험(UX) 개선과 고객 유입 효과를 동시에 노리고 있다. JP모간은 헬스케어 결제 플랫폼 ‘인스타메드’를 인수해 의료기관 결제 서비스에 임베디드 금융을 도입했다. 청구와 결제 과정을 전자화한 뒤 효율을 높여 향후 JP모간의 결제 서비스 확장의 중요한 발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만약 글로벌 금융사들이 한국과 같은 엄격한 망분리 규제에 묶여 데이터 통합과 클라우드 활용에 제약을 받았다면 이런 혁신 서비스는 실현되지 못했을 것이다.
금융업계 핀테크, 추진력 내려면
한국의 금융사들도 망분리 규제 완화를 통해 클라우드 인프라를 도입하고 핀테크 기업과의 협력을 확대해 디지털 혁신을 가속할 수 있다. 특히 오픈뱅킹, 자동화된 투자 자문 서비스, 디지털 뱅킹 플랫폼 등은 한국 금융사들이 고객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는 중요한 기회가 될 것이다.

물론, 망분리 규제 완화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망분리는 보안 사고 예방에 핵심 역할을 하기 때문에 보안과 혁신 간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글로벌 금융사들도 다양한 보안 안전장치를 통해 디지털 혁신을 추진하면서 보안을 강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JP모간은 클라우드 보안 기술과 데이터 모니터링 시스템을 강화하고 있다. 씨티은행과 골드만삭스도 보안 조치를 통해 핀테크와의 협력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 금융사 역시 보안 강화를 위한 모니터링 시스템과 보안 교육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보안 위험을 최소화하면서 디지털 혁신을 추구할 수 있다.

망분리 규제 완화는 한국 금융기관에 ‘기회의 신’인 카이로스와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카이로스는 머리카락이 이마 앞에 있을 때만 잡을 수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다만 한번 지나가면 다시는 잡을 수 없다. 국내 금융산업이 글로벌 금융기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삼성전자, 현대자동차와 같은 규모의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망분리 규제 완화의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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