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씨 뿌려 '인공 비'…가뭄·산불위험 막는다

입력 2024-11-24 17:30   수정 2024-11-25 00:17


“지구 온난화와 이상 기후로 앞으로 더 강하고, 더 잦은 기상 위험이 생길 겁니다. 인공 구름은 이를 완화할 ‘기상 조절’의 핵심 수단으로 활용될 전망입니다.”

지난 20일 제주 서귀포 국립기상과학원 구름물리실험체임버동에서 만난 김승범 기상응용연구부장은 “산불 진화부터 가뭄 해소, 미세먼지 감소 등 인공 강우 기술이 가져다줄 효과는 무궁무진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기상청 산하 국립기상과학원은 강우량을 인위적으로 늘리는 인공 강우(또는 인공 증우) 연구를 위해 2022년 8월부터 구름물리실험체임버 시설을 설치, 운영 중이다.
세계 아홉 번째로 독자 개발
2개 층, 연면적 893㎡ 규모의 구름물리실험체임버실에선 이날 취재진을 위해 구름 씨앗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재연했다. 밀폐된 정육면체 풍동기 내 20g가량의 요오드화은 막대를 연소시키자 새하얀 구름 씨가 보이기 시작했다. 생성된 구름 씨는 항공기에서 뿌려지는 것과 비슷한 초당 100m 속도로 에어로졸 체임버로 빨려 들어갔다. 이중 냉각 구조로 설계된 체임버 내부 온도는 수십 초 내 영하 70도까지 떨어졌고, 구름 씨는 온도에 따라 원형, 기둥형, 비정형 등 각기 다른 모양으로 바뀌며 점차 커져갔다.

차주완 국립기상과학원 기상응용연구관은 “요오드화은을 태우면 작은 입자가 생기는데 이 입자가 낮은 온도의 구름에서 주변 얼음을 끌어모으는 역할을 한다”며 “요오드화은 20g 기준으로 구름 씨 수백만 개가 형성돼 강우량을 늘리는 데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구름물리실험체임버는 대기 중 구름 형성과 강수 과정을 인공적으로 재현하기 위해 설계된 폐쇄 실험 공간이다. 한국에선 미국 중국 등에 이어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지어졌다. 체임버는 온도와 기압, 습도 등을 제어한 뒤 구름 씨를 만들어내는 실험을 반복해 인공 강우 기술을 개선하는 데 쓰이고 있다.

한국의 구름물리실험체임버는 기상 조절 목적에서 출발했다는 설명이다. 인공 강우 기술이 가뭄 저감이나 산불 예방뿐만 아니라 미세먼지 감소, 도심 열섬 현상 완화 등 각종 기상 위험을 줄이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차 연구관은 “지금의 연구 단계는 구름이 어느 정도 형성돼 있을 때 구름 씨앗을 더해 비의 양을 증가시키는 ‘증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이를 통해 다양한 기상 상황을 조절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했다.
중동·동남아 등 수출도 추진
산불 등 일부 재해·재난 대응은 실용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지난 5월부턴 강우량이 적어 대형 산불에 취약한 강원영동 일대를 중심으로 인공 증우 실험을 하고 있다. 산불이 잦은 건조한 시기에 강우량을 늘려 발화나 확산을 예방하는 방식이다. 국립기상과학원 관계자는 “지난해 기준 연 강수량의 1.7%를 내리게 할 수 있는 기술 수준에 도달했다”며 “2028년까지 이 수치를 7.5%로 높이는 게 목표”라고 했다.

기상청은 새로운 구름 씨 물질 개발에도 나선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미국 중국 독일 아랍에미리트 등과 협업해 나라별 구름 씨 수집에도 힘을 쏟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중동과 동남아시아 지역 등을 대상으로 관련 기술 수출도 추진할 방침이다. 기상청 관계자는 “폭염과 가뭄 등 이상 기후가 지구촌 곳곳에서 나타나는 가운데 독자 개발된 우리 인공 강우 기술을 원하는 나라도 많아지는 추세”라며 “10년 내 300억원 이상 수출 실적을 달성해 ‘K-기상’ 인프라의 확산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귀포=안정훈 기자 ajh632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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