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위원장은 이날 “상법 개정안에 따라 기업 이사진의 의사결정이 지연되고, 주주들의 소송도 늘어날 것”이라며 이같이 설명했다. 정부가 야당에서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에 공식적으로 반대 의견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야당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을 추진 중이다.
김 위원장은 “외국 투기자본이 상법 개정안을 빌미로 기업에 과도한 요구를 하거나 경영권을 위협하는 사례가 생길 것”이라며 “기업들이 이에 대응하기 위해 보유 자원을 낭비하는 과정에서 기업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상법 개정안을 등에 업은 외국 투기자본이 단기적으로 기업의 이익을 빼먹고 나갈 수 있다”며 “기업 주가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했다.
이어 상법 개정안이 기업 경영을 옥죌 수 있는 만큼 소액주주 보호를 위한 대안으로 ‘핀셋 규제’인 자본시장법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소액주주 가치를 훼손하는 상장사의 지배구조 문제는 합병·분할 과정에서 주로 불거졌다”며 “문제로 지적된 합병·분할 등에 관해 맞춤식으로 법을 개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상법 개정안의 부작용을 피해 가면서 일반 투자자를 보호하는 실효적 조치를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 "상법 개정안, 기업·시장에 부정적 영향"
정부가 상법 개정안 도입 반대로 선회한 것은 재계의 우려가 예상보다 컸기 때문이다. 삼성,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국내 16개 대기업 사장단은 이달 21일 “기업을 해외 투기 자본의 먹잇감으로 만들 것”이라며 상법 개정안을 반대하는 내용의 긴급성명을 냈다. 정부와 재계의 반대에도 야당은 상법 개정안 도입을 벼르고 있다. 해외 행동주의 펀드도 야당의 상법 개정안 추진을 반기고 있다.
이처럼 상법을 손질할 경우 행동주의 펀드와 소액주주들이 기업 이사를 상대로 배임·사기죄 소송을 남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행동주의 펀드와 소액주주들이 ‘주주충실의무’ 조항을 바탕으로 회사의 정상적 경영 활동에 개입할 가능성도 높다. 김 위원장과 재계도 이 같은 점을 한목소리로 우려한다.
야당은 상법 개정안에 상장사의 집중투표제 도입을 의무화하고, 분리선출 감사위원을 현행 1명에서 2명으로 늘리는 조항도 담을 계획이다. 정부와 재계는 이 같은 내용을 기업 경영권 위기를 불러올 ‘독소 조항’으로 보고 있다.
집중투표제는 주식 1주당 선임하는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감사위원 분리선출 제도는 감사위원을 뽑을 때 대주주 의결권을 3%로 묶어두는 제도다.
두 제도는 이사회 이사를 선출할 때 소액주주와 행동주의 펀드의 영향력을 높이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행동주의 펀드가 이 제도를 악용해 이사회 장악력을 높일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이 같은 독소 조항을 담은 상법 개정안이 통과하면 국내 10대 상장사 가운데 4곳의 이사회가 외국계 투기 자본에 장악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계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는 2018년 현대자동차그룹을 공격하면서 ‘집중투표제 의무화’를 요구한 바 있다.
민주당은 지난 14일 상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하고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이다. 이 대표는 22일 상법 개정안과 관련해 공개 토론을 제안했다.
정부와 재계는 소액주주 보호를 위해 상법보다 자본시장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기업의 합병과 분할과 관련한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소액주주 권익을 충분히 지킬 수 있다고 본다.
정부는 상속세를 비롯한 세법 개정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상속세 부담이 워낙 커서 기업 대주주들이 주가가 오르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며 “상속세 부담을 덜어주고 밸류업 기업에 배당 세제 혜택을 주는 방안을 논의할 때”라고 말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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