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투자협회의 야심작 디딤펀드가 출시 두 달을 맞은 가운데 수탁고 상위 3개 펀드 판매분의 절반 이상이 삼성증권에서 판매돼 관심이 쏠립니다. 연금 고객이 더 많은 다른 대형 증권사와 비교해도 차이가 크다는 점에서 그 배경에 이목이 쏠리고 있습니다.
25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 25개 디딤펀드의 수탁고(설정액)는 지난 20일 기준 1160억600만원으로 집계됐습니다. 디딤펀드 출시일인 지난 9월25일과 비교하면 365억900만원 증가한 수치입니다.
디딤펀드는 주식·채권 등 다양한 자산에 분산 투자해 안정성을 확보하고, 예·적금 등 원리금 보장 상품보다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는 밸런스펀드(BF)로 분류됩니다. 타깃데이트펀드(TDF) 중심의 퇴직연금 시장에서 BF를 활성화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됐습니다. 운용사 1곳당 1개의 디딤펀드만 출시할 수 있는 만큼, 책임 운용이 이뤄지면서 검증받은 BF가 늘어날 것이란 기대가 나옵니다.
다만 디딤펀드가 연금 상품인 만큼, 출시 초기부터 대규모 자금 유입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유입 자금 대부분은 매달 연금 계좌로 들어오는 근로자의 월급이기 때문입니다.
흥국자산운용이 모그룹 계열사로부터 지원받은 초기 설정 자금 200억원을 제외하면, 수탁고 증가액 기준 상위 운용사 3곳은 신한자산운용, 삼성자산운용, 이스트스프링자산운용으로 집계됐습니다. 업계에서는 이들 운용사의 디딤펀드가 주로 삼성증권에서 판매됐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디딤펀드 출시 후 이달 20일까지 신한자산운용의 '신한디딤글로벌'로 유입된 자금은 76억300만원입니다. 전체 디딤펀드 중 가장 많은 수준입니다. 그런데 이중 76%가 삼성증권 창구에서 판매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어 같은 기간 삼성자산운용의 '삼성디딤밀당다람쥐' 수탁고 증가액이 30억3600만원으로 뒤를 이었습니다. 이 디딤펀드도 증가액의 87%가 삼성증권에서 유입됐습니다. 또한 이스트스프링자산운용의 '이스트스프링디딤글로벌리더스40'의 수탁고 증가액은 29억7500만원으로 3위를 기록했는데, 여기서도 삼성증권 판매 비중이 40%에 달했습니다. 이밖에 다른 디딤펀드의 수탁고 증가액이 1100만원에서 7억원 사이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삼성증권에서만 유독 많이 판매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디딤펀드 활성화에 앞장서고 있는 금융투자협회는 삼성증권의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 화면 구성을 그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삼성증권 MTS 연금 탭에는 디딤펀드가 TDF와 함께 별도 구성돼 있습니다. 대부분의 증권사들이 전체 항목에 모든 펀드를 집어 넣은 것과 차별화된 지점입니다. MTS 내 디딤펀드를 전면 배치한 게 투자자들의 접근성을 크게 높였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옵니다.
금투협 관계자는 "아직 초반이지만 신한자산운용, 삼성자산운용, 이스트스프링자산운용 등 3곳의 수탁고가 톱3를 구성해 움직이고 있다"며 "비슷한 펀드 라인업을 구축한 다른 대형 증권사와 달리 주로 삼성증권 창구에서 해당 디딤펀드들이 판매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디딤펀드가 대부분 비대면으로 판매되는데, 삼성증권 MTS를 보면 '펀드 매수하기' 화면에 TDF와 디딤펀드가 전면에 나와 있다"며 "전체 펀드 안에 묻혀 있는 게 아니라, 디딤펀드 전용 단축 경로가 생성된 것 이외에는 유독 삼성증권에서 잘 팔리는 이유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고 부연했습니다.
이에 금투협은 다른 증권사에도 MTS 내 디딤펀드의 단축 경로를 구축하도록 독려하고 있습니다. 현재 대형사 중 삼성증권만 이 같은 화면 구성을 갖춘 상태입니다. 중소형사 중에서는 △대신증권 △하나증권 △iM증권 등 3곳이 단축 경로를 만들었습니다. 이밖에 △NH투자증권 △신한투자증권 △KB증권 △한화투자증권 △우리투자증권 등은 이른 시일 내 단축 경로를 구축한다는 계획입니다.
금투협 관계자는 "연말 증권사들의 본격적인 절세 마케팅이 진행되기 전, 협회나 개별 운용사의 (디딤펀드) 홍보가 자금 유입으로 연결되긴 쉽지 않다"며 "(디딤펀드) 단축 경로가 (프로모션 없이) 능동적으로 찾아온 투자자에게 상당히 유의미한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쇼핑·배달 앱(애플리케이션) 등에서도 상품과 식당 정보를 어디에 노출하느냐에 따라 주문량 차이가 크다"며 "직관적으로 소비자 눈에 잘 띄는 곳에 상품이나 서비스를 노출하면 실제 계약이나 구매로 이어질 가능성도 커지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고정삼 한경닷컴 기자 js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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