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보험업권의 인공지능(AI) 기술은 10점 만점에 4점 수준에 불과합니다.”
김준석 한화생명 AI실 실장은 25일 기자와 만나 “생명보험은 보험설계사 등 대면 채널을 통한 판매 비중이 90%를 넘는다”며 “보험업은 금융업 중에서도 인력 의존도가 굉장히 높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실장은 과거 네이버의 번역 서비스 ‘파파고’를 만들었던 핵심 연구진이다. 네이버에서 파파고 리더를 지낸 뒤 2019년 현대차로 이직했다. 이후 현대차에서 5년간 AI 기술 리더를 맡고 올 3월 한화생명에 입사했다. 국내 주요 대기업에서 AI 실무를 담당하며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남다르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실장은 보험 등 금융권의 AI 기술에 대해 “발전할 부분이 많은 초보적 단계”라며 “회사 간 수준 차이가 크지 않다”고 평가했다. 그 이유에 대해선 “금융회사는 고객 돈을 다루기 때문에 신기술 적용에 보수적이고 규제도 강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내년부터는 생성형 AI 기반 서비스가 쏟아지며 본격적인 경쟁이 펼쳐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올해 8월 금융당국이 ‘망 분리 규제 완화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생성형 AI 기반 서비스 출시가 가능해져서다.
망 분리 규제는 금융회사의 내부망과 외부 인터넷망을 끊어놓도록 한 제도다. 그동안 금융사는 챗GPT 등 외부 서버에 구축된 AI 클라우드 서비스를 사용할 수 없었다. 앞으로는 규제 샌드박스(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받으면 고객관리·인사관리·보안관리·업무자동화 등에서 외부 AI 서비스를 쓸 수 있다.
김 실장은 “규제 샌드박스에 약 130여건이 신청된 만큼 내년부터 많은 혁신적인 서비스가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며 “현재 보험사들의 AI 기술 수준이 비슷하지만 내년부터 부각을 나타내는 업체가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화생명은 김 실장 영입과 동시에 AI실을 신설하며 사업 확대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이 회사는 다음달 대규모언어모델(LLM) 기반 챗봇 서비스를 출시할 예정이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등 다이렉트 채널에서 고객이 상품 관련 질문을 했을 때 AI가 약관을 바탕으로 설명하는 서비스다. 이를 통해 고객은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궁금한 점을 질문하고 답변받을 수 있을 전망이다.
내년 1분기에는 설계사 영업을 돕는 챗봇 서비스도 출시할 계획이다. 김 실장은 “고객이 특정 질환에 걸려 수술받았을 때 얼마를 보상받을 수 있는지 설계사가 일일이 파악하기 쉽지 않다”며 “AI가 계약정보와 약관 내용을 바탕으로 설계사에게 정보를 알려주면 고객 관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화생명은 금융뿐 아니라 비금융 부분에서도 AI 기술을 활용할 계획이다. 한화그룹의 금융브랜드 ‘라이프플러스’에 AI를 탑재해 예술, 문화, 교육 관련 서비스를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한화생명은 각 분야의 핵심 콘텐츠를 갖고 있는 파트너사와 제휴를 추진하고 있다.
회사가 최근 추진하고 있는 글로벌 진출도 AI 사업과 시너지를 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김 실장은 “한국에서 AI 성공 사례를 만들면 베트남, 인도네시아, 미국 등 한화생명의 글로벌 자회사에 이를 적용할 수 있다”며 “한화손해보험, 한화자산운용 등 다른 계열사와도 AI 사업과 관련해 협업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실장이 최근 주목하는 기술은 인공지능 비서(AI 에이전트)다. 지금까지 AI가 수동적으로 질문을 답변하는 수준이었다면, AI 에이전트는 능동적으로 문제를 풀어내면서 인간처럼 업무를 할 수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김 실장은 “내년부터는 보험과 자산관리 분야의 에이전트 AI를 만들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형교 기자 seogy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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