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1월 27일 09:50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제조 등을 위탁하는 하도급거래 과정에서 거래 상대방, 즉 수급사업자인 중소기업에 부당하게 기술자료를 요구하고 나아가 수급사업자로부터 제공받은 기술자료를 부당하게 외부에 유출하거나 또는 그 기술자료를 제공 목적 이외의 용도로 이용하는 행위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 위반으로 판단하고 제재하였다는 언론보도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하도급거래 과정에서 기술자료와 관련하여 문제되는 불공정행위에 대하여는 많은 경우 구체적 위반 유형을 따지지 않고 ‘기술유용’ 또는 ‘기술탈취’라는 표현이 언론 등에서 관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대기업과 중견 또는 중소기업 사이의 신규사업 제안이나 공동사업을 위한 초기 협의가 결실을 보지 못한 채 대기업이 단독으로 상품이나 서비스를 출시한 경우 사업 제안 또는 협의 상대방인 중견 또는 중소기업이 사후적으로 ‘대기업에 아이디어를 탈취당했다’고 하면서 공정위에 신고하거나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였다는 소식도 심심찮게 들려 온다.
하도급법에서 금지하는 소위 ‘기술탈취’ 행위의 의미는 넓게는 ‘정당한 사유 없는 기술자료 제공 요구’, ‘기술자료를 제공 요구하거나 제공받는 과정에서 기술자료 제공요구서 발급 또는 비밀유지계약 체결 의무 미이행’ 및 ‘제공받은 기술자료 유출 또는 유용’ 등 여러 유형을 포괄하고, 좁게는 기술자료 유출, 유용을 가리키는데, 「대ㆍ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및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부정경쟁방지법”) 등에서도 기술자료 또는 영업비밀 보호를 위해 유사한 취지의 규제를 마련하고 있다.
사실 ‘기술탈취’ 규제가 하도급법에 도입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기술탈취’ 규제 근거는 2010년 하도급법 개정을 통해 도입되었으나, 2017년 전까지는 기술적 사항 판단을 위한 인프라 문제, ‘기술탈취’ 위반행위의 중대성에 대한 인식 수준 등의 문제로 활발하게 집행되지 않다가 2017년에 범정부 차원에서 기술유용 근절을 위한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기술심사자문위원회 발족, 공정위 내 조사팀 신설 등 법집행 인프라를 개선하고 법률 및 심사기준 개정을 통한 판단기준 구체화, 위반행위에 대한 제재수준 상향 등 집행을 활발히 하고 있다. 실제로 ‘기술탈취’ 행위에 대한 규제는 다른 하도급법 위반행위에 비하여 보다 더 엄격한데, 예를 들어 ‘기술탈취’ 행위에 대하여는 공정위가 문제된 하도급거래가 종료된 지 7년 이내에는 조사를 개시할 수 있고 또 조사 개시 후 7년이 경과하기 전까지는 제재처분을 내릴 수 있도록 되어 있어 다른 하도급법 위반행위에 대한 조사 개시 기한 및 처분시효가 각각 3년인 것에 비하여 절차적으로 강화되어 있다. 또한 하도급법이 여러 차례 개정되면서 ‘기술탈취’ 행위로 형사고발이 된 경우 단 한 번의 위반행위만으로 공공계약에 대한 입찰참가자격이 제한될 수 있도록 하였고, 또 ‘기술탈취’ 행위로 손해를 입은 거래 상대방이 위반행위자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 실제 발생한 손해액의 5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이 가능하도록 하는 등 공정위의 법집행 분야 중 가장 강화되는 영역이 ‘기술탈취’ 규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편, ‘기술탈취’ 행위로 인정되는 범위 또는 기준도 매우 광범위하다. 예를 들어 ‘기술탈취’ 행위의 대상인 ‘기술자료’는 ‘경제적 유용성’이 있고 수급사업자가 ‘비밀로 관리하는’ 일체의 기술적 자료로서 반드시 문제된 하도급거래 이행 과정에서 작성되는 것에 한정되지 않고 부정경쟁방지법에 따른 보호 대상인 영업비밀과 달리 제3자에게 알려져 있는 자료라고 하더라도(즉 ‘비공지성’이 인정되지 않더라도) 하도급법에 따른 규제 대상인 ‘기술자료’에 해당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다른 한편, ‘경제적 유용성’ 또는 ‘기술적인 가치’의 수준이 상당히 높지 않은 경우나 수급사업자가 해당 자료를 ‘비밀로 관리’하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는 정도에 이르지 않더라도 ‘기술자료’로 인정되는 경우가 실무상 빈번하다. 또한 ‘유용’의 개념도 ‘기술자료’를 제공받은 목적과 달리, 또는 그 범위를 넘어 이용하는 일체의 행위라고 넓게 해석하고 해당 ‘기술자료’를 활용하여 독자적으로 제품을 완성할 수 있는 정도는 이르지 않더라도 단순 참고 목적으로 활용하거나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하더라도 제재 대상인 ‘유용’ 행위로 인정된다는 것이 공정위 및 법원 판단의 일반적 경향이다.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필자가 여러 기업들과 법률자문 또는 준법교육을 하는 과정에서 법률이나 규제기관의 집행 기준과 기업들의 눈높이 사이에 상당한 간극이 있었는데, 특히 ‘이 기술은 우리 회사가 거의 전부 개발한 것이고 하청기업의 기여도는 1% 미만이거나 도면을 그리는 데에 손을 보탠 정도에 불과하므로 우리 회사의 기술인 것인데 왜 그걸 공정위가 기술탈취라고 문제 삼느냐’라거나, ‘하청기업의 기술 수준이 워낙 낮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것인데, 그래도 기술 수준이 어느 정도는 되어야 기술자료로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 아니냐’는 문의를 많이 받았다. 특히 오랫동안 연구개발 업무를 한 중견 엔지니어들이나 부정경쟁방지법에 따른 ‘영업비밀’ 보호와 관련한 업무 경험이 풍부한 법무팀 변호사들로부터 그런 문제 제기가 많았다.
하도급법에서 규제하는 ‘기술탈취’가 부정경쟁방지법의 규제 대상인 ‘영업비밀 침해’와 유사해 보이지만, 필자가 이해하기로 ‘기술탈취’ 규제는 중소기업이 보유한 ‘기술’ 자체를 보호하거나 ‘기술’이 침해되어 중소기업의 기술적 경쟁력이 약화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제도는 아니다. 오히려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대한 우월한 거래상 지위를 토대로 일방적으로 단가 인하 요구, 발주 취소 요구, 거래 중단 요구 등 불공정행위를 하거나 그 과정에서 거래 상대방인 중소기업의 기술자료를 요구하거나 다른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단가 인하, 거래 중단 등을 관철시키는 수단으로 삼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공정위나 법원이 ‘기술탈취’ 사건에 대한 판단 과정에서 기술자료의 객관적 가치나 수급사업자의 기여도, 비밀유지 노력의 정도 등을 엄격하게 따지지 않거나, ‘기술자료’ 해당 여부, ‘유용’ 여부에 대해 본격적으로 검토하기 전에 대기업이 하도급거래 상대방인 중소기업에 대해 얼마나 거래상 지위를 남용하여 무리한 단가 인하를 요구하거나 거래처를 변경하려는 시도를 해 왔는지, ‘기술탈취’ 행위가 다른 유형의 불공정 하도급거래행위의 수단으로 활용되거나 이를 용이하게 한 것인지 여부에 대해 깊게 따지는 경향을 보이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평소 기업들에 대한 법률 자문이나 준법교육 과정에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기술적 가치나 실제 비밀관리 상태 등을 따지지 말고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경우에 기술자료로 보면 십중팔구는 맞게 본 것’이라고 안내하곤 한다.
다만 중소기업을 보다 강하게 보호하려는 ‘기술탈취’ 규제 취지에서 ‘기술자료’ 또는 ‘유용’ 등을 폭 넓게 인정하고 위반행위에 대해 강하게 제재하는 것과 별도로, 필자가 보기에 하도급법을 집행하는 실무 관점에서 대기업이 하도급거래 상대방인 중소기업과 기술적인 내용이 포함된 자료를 주고 받는 모든 경우를 규제 대상인 ‘기술자료’로 규정하여 규제하는 것이 필요한 상황인지, 또는 대기업이 그런 자료를 제공하도록 요구하거나 거래 상대방으로부터 제공받은 ‘기술자료’를 이용하는 개별적, 구체적인 행위가 실질적으로 하도급법상 ‘기술탈취’의 규제 취지에 배치되는지 여부에 대해 신중하게 판단하지 않는 경우도 종종 발견되곤 한다.
즉 하도급법이 ‘기술탈취’를 규제하고 위반행위를 강하게 제재하는 것은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대한 거래상 우월한 지위를 남용하여 불공정한 내용으로 하도급거래를 진행하고 실질적으로 거래 상대방인 중소기업에 부당한 피해를 가하는 것, 소위 ‘갑질’로부터 중소기업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고 실질적으로 이러한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기업간 거래 행위를 ‘기술탈취’로 규제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하도급거래를 체결하여 이행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주고받아야 하는 자료, 예를 들어 하도급계약을 체결하기 위하여 제조위탁 대상 부품의 규격을 도면, 수치 등으로 특정, 합의하고 해당 도면을 하도급거래계약서의 일부로 상호 주고받는 경우로서 실질적으로 ‘갑질’로 볼 이유가 없는 경우에도 해당 계약서에 첨부된 도면에 기술적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로 ‘기술자료’로 규정하여 이를 주고받기 위해 하도급거래계약 체결 전에 별도의 기술자료 제공 요구서 내지 비밀유지계약서를 작성하여 주고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재하거나 대기업이 그러한 하도급거래계약서의 일부인 도면을 자체 업무 목적으로 활용한 것을 이유로 과징금 부과 및 형사고발의 제재가 당연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몇 년 전 유사한 상황에서 특허법원은 특정 도면이 그 용도 및 작용 매커니즘이 동종업계에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수급사업자가 상당한 노력에 의하여 비밀로 유지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하거나, 당사자 사이에 합의한 내용만으로 구성된 자료라거나, 또는 당사자의 사전 협의에 따라 서로가 역할을 분담하여 실험한 결과로서 당사자들이 공유하는 결과물이라는 이유 등으로 하도급법의 규제 대상인 ‘기술자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바 있는데(특허법원의 이러한 판단은 대법원 판결로 확정되었다), 필자의 견해로 법원은 ‘수급사업자가 기술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자료를 소지’하였다는 이유만으로 형식적인 판단을 한 것이 아니라 해당 자료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이를 주고 받은 구체적인 상황을 개별적으로 검토하여 하도급법의 ‘기술탈취’ 규제를 적용할 실질적인 필요가 있는 경우인지 판단한 것이고, 앞으로 이와 같은 선례가 축적되어 대기업 및 중소기업 모두에게, 그리고 1차적으로 ‘기술탈취’ 사건을 담당하는 공정위가 참고할 수 있는 판단기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아울러,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서 하도급거래나 연구개발 프로젝트가 진행되다가 중단된 이후 중소기업으로부터 ‘기술탈취’ 문제가 제기되는 경우를 들여다 보면 실질적으로는 하도급법이 적용되지 않는 거래 유형이어서 ‘기술탈취’에 애초에 문제되지 않는 경우이거나 대기업의 소유여서 ‘기술탈취’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기업간 거래에서 거래의 실제 내용과 계약서 명칭 또는 절차 등 거래의 형식 사이에 차이가 있어 대응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안타까운 경우를 보게 된다.
‘기술탈취’에 대한 규제가 강화된 지 여러 해가 지났고, 최근에는 많은 대기업들이 중소기업과의 하도급거래를 통한 협업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게 ‘기술탈취’ 문제가 제기되지 않도록 기술자료 관리 시스템 구축 및 관련 업무절차 정비 등 예방적 조치를 완비한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 많은 기업들이 경영사정상 규제에 대한 이해 부족이나 예방시스템을 갖추지 못하여 규제 리스크에 여전히 노출되어 있는 것도 사실인데, 앞으로 ‘기술탈취’ 관련 제도가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제도로 발전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그리고 규제기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집행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
<i>* 변호사, 본고는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이며, 필자가 속한 법률사무소의 공식적인 입장과는 관련이 없습니다.</i>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