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자리를 인공지능(AI)과 드론이 채운다. 드론의 눈을 빌린 AI는 선박 교통 관리 시스템을 활용해 항만 혼잡 지점을 예측하고 선박 경로 계획에 적용한다. 싱가포르가 4단계에 걸쳐 2040년까지 완공할 ‘투아스(Tuas) 차세대 항만 프로젝트’의 미래다.
지난 4일 지역 경제인 20여명으로 구성된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싱가포르와 베트남 호찌민 등을 둘러본 양재생 부산상공회의소 회장(사진)은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격세지감을 온몸으로 느꼈던 출장이었다”며 “이미 환적물량 세계 1위 규모를 자랑하는 싱가포르는 AI라는 신기술을 활용해 더 큰 미래를 그리고 있다는 사실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싱가포르항은 연간 3700만TEU의 환적 물동량 규모를 자랑한다. 세계 2위 환적항인 부산항(1200만TEU)보다 세 배 이상 큰 규모다. 투아스항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면 총 26㎞ 길이의 항만에 66개 선석이 들어선다. 연간 6500만TEU 규모의 물동량을 처리하는 항만이 새롭게 탄생하는 셈이다. 양 회장은 “아직은 항만 자동화가 사람이 처리하는 것보다는 늦은 수준”이라면서도 “이미 압도적인 규모의 항만 인프라에 100년 뒤의 미래를 반영한 공격적 투자가 이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은산해운항공을 중심으로 그룹 전체 매출액 5000억원 규모의 회사를 일군 그는 부산항 역시 싱가포르항 못지않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물류가 오가기 시작하면 사람과 자본도 집중된다. 싱가포르처럼 물류에 대한 체계적인 계획 수립과 집중적인 투자는 결국 다른 산업을 자극하며 지역 경제를 살리게 될 것”이라는 게 지역 경제계 수장의 시각이다.
양 회장의 주장은 수치로도 증명된다. 부산상의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글로벌 물류 거점을 이룩한 싱가포르는 2010년 복합리조트까지 운영했다. 관광객 수는 2009년 968만명에서 2010년 1164만명, 2019년에는 1910만명을 기록했다.
대량생산, 저렴한 인건비, 해외 생산 거점 구축은 과거 ‘신발 생산 일번지’였던 부산 신발 산업에도 고스란히 적용되는 공식이다. 화승비나와 삼덕베트남은 1990년대 전성기를 맞았던 부산 신발 산업의 산증인이다. 경제사절단은 싱가포르에 이어 화승엔터프라이즈의 베트남 법인인 화승비나와 삼덕통상의 베트남 법인 삼덕베트남 공장을 각각 찾았다. 화승비나는 세계 최대 신발 ODM(주문자 개발 생산) 공장이다. 삼덕베트남은 2017년 가동을 시작해 현재 4500명의 근로자가 일하고 있다. 베트남 롱안성에 진출한 30여개 한국 기업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특히 삼덕통상은 베트남 안장성에 제2공장을 신축하고 있다. 내년 2000명을 고용해 가동할 방침이다.
싱가포르항만공사(PSA)에 이어 20명이 근무하는 스마트팩토리 현장에서 연간 3만대의 전기차 생산이 가능하다는 현대자동차 싱가포르 글로벌 혁신센터를 방문한 양 회장은 “로봇과 AI 등이 결합한 기술이 국가 인프라(싱가포르항)와 대기업(현대차), 지역 기업의 해외 생산 기지에도 골고루 활용되고 있다”며 “어쩌면 리쇼어링의 꿈이 AI로 다시 실현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난 4월 취임한 양 회장은 취임과 동시에 부산시, 산업통상자원부 등과의 협력을 강화해 현장 중심의 기업 정책 만들기에 앞장서 왔다. 부산시가 운영하던 원스톱 기업지원센터를 부산상의로 이전했으며, 부산상의의 기업애로 현장방문반을 연계했다. 운영 1년도 지나지 않아 171개의 기업 애로사항을 발굴했고, 22건의 정책 건의 사항을 만들어 부산시와 관련 정부 기관에 제출했다. 특히 산업부의 지원을 받아 동남권 사업재편현장지원센터를 지자체 중 처음으로 부산에 짓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운영은 부산상의가 맡았다.
양 회장은 “스마트팩토리와 AI 도입 등은 영세 기업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부산의 산업 구조상 쉽게 확대하기 어려운 작업이다”며 “사업다각화를 지원하는 사업재편현장지원센터를 중심으로 AX 확대를 체계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산=민건태 기자 mink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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