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가 이야기 해주는 협상의 기술 [김태엽의 PEF썰전]

입력 2024-11-27 10:31  

이 기사는 11월 27일 10:31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흑수저 출신의 필자가 인생 제일 아쉬운걸 하나 뽑으라면 풍성한 머릿결, 두번째가 바로 형제자매가 없는 것이다. 매일 치고받고 싸울 형제자매가 없는 덕에, 필자가 탑재한 다양한 사회적 기술 (Social skills) 중 협상의 능력이 늘 가장 약해왔다. 이 때문인지, 필자는 백화점에서 가격을 깎거나, 선배들한테 밥을 뜯어 먹거나, 길거리 여학생 헌팅 하는 것이, 모르는 사람 1000명 앞에서 발표하는 것 보다 더 힘들었다.

각설하고, 인생은 협상의 연속이다. 그 중에서도 사모펀드에서는 그 어떤 투자업 중에서도 협상이 제일 중요하다. 주식 투자자라면 차트 보고 ‘시장 가격’에 살꺼냐 팔꺼냐만 결정하면 될터인데, 사모펀드의 경우는 오너에게서 회사를 사는 것도, 다른 펀드에 파는 것도, 임직원을 고용하고 내보내는 것도, 하다못해 인플루언서를 고용해서 마케팅 하는 것도 모두 협상의 과정으로 정해지기 때문이다.

자, 그러면 이런 협상에 점철된 19년 인생을 산 필자가 연말 인사평가와 승진 (혹은 퇴사) 시즌을 앞둔 여러분께 수줍게 나눌 수 있는 협상의 비법은 무엇이 있을까?

협상의 비법 (Do’s)
1. 나한테 진짜 중요한 것을 찾아내라


인생 최대의 협상인 결혼을 예로 들어보자. 만족스런 결혼 (혹은 교제)은 ‘나를 잘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 잘생기고, 몸매도 좋고, 돈도 잘벌고, 학벌도 좋고, 술담배도 안하고, 식스팩은 있는데 집안 좋은 총각들은 10년 전에 씨가 말랐듯이, 내가 진짜 중요한 것 두세개 정도를 철저히 순서로 나래비 세울 수 있어야 협상의 테이블에 앉을 수 있다.

기업의 인수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매각 가격이 중요하다면 최대한 꼼꼼히 실사를 해서 사후정산 아이템들을 잘 챙겨두면 되고, 그것도 모자라면 나눠주던지 매각측한테 거꾸로 돈을 빌려 인수하는 vendor financing이라는 방법을 쓸 수도 있다. 반대로 신속한 매각 자체가 중요하다면 계약 체결을 먼저 해두고 클로징을 나누어서 할 수도 있다. 스스로 나는 월급이 중요한지, 보너스가 중요한지, 승진이 중요한지, 권력 (혹은 empowerment)가 중요한지 되물어 보자. 내가 모르겠으면 나를 잘 아는 친구 선배 가족에게 물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2. 퍼졌을 때의 최선 대안을 구체화 하라

협상 수업을 들으면 나오는 용어인데, BATNA (베트나, 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 즉 협상이 파토났을 때의 나의 최선 대안을 꼭 먼저 아주 구체적으로 정의하라. 이게 있어야 깨져도 될 만큼 사선까지 협상을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필자는 회사를 매각할 때 우선 한두명의 잠재 구매자와 사전 협상을 하는 걸 선호하는데, 혹시나 딜이 엎어졌을 때도 나의 BATNA는 못파는 게 아니고 공개 프로세스를 밟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초장에 너무 거창하게 나가다가 딜이 퍼지면, 실상이야 어쨌던 구설수의 꼬리가 붙는다. 여러분도 겪어봤던 대학교 과CC (캠퍼스 커플), 사내 커플 혹은 연예인의 공개 연애가 주는 이름 모를 부담감이 바로 연애전선에서의 BATNA를 후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BATNA를 자세히 정의하다 보면 필수적으로 나오는 것이 내가 ‘양보할 수 있는’ 영역이다. 즉 딜을 파토내기 보다는 팔하나 내주는 게 나은 옵션들이 나오는데, 이러한 자기 탐구의 결과 더 풍부하고 창의적인 협상의 결과가 나오게 된다. 종종 쓰는 꼼수를 하나 나누면, 필자는 사업부 분할이나 계열사 분리를 통해 인수를 할 경우, 애매하고 잘 안쓰는 비영업 자산을 최대한 받아올려고 한다. 잘 안쓰는 주차장, 재활용품 창고, 철거한 기계 장비, 상각이 끝난 불용 재고, 사원 아파트의 전세금, 콘도 회원권, 임원 생명 보험 등등, 이런 자질구래한 자산들이 결국 돈이 되고, 이를 통해 가격에 대한 첨예한 이견을 좁힐 수 있다.

3. 철저하게 상대방의 입장에서 숫자를 준비하라

마지막으로 상대방의 주머니 사정을 반드시 “구체적”으로 파악해서 그 사람의 입장에서 협상 전략을 짜 봐야 한다. 지금 당장 돈은 있는지, 어디 써야할 일은 없는지, 더 나은 투자처를 꼬불쳐두고 있는 건 아닌지 파악하는 것이 내가 얼마를 지불할 수 있지 정하는 것 보다 100배 더 중요하다. 좀 민망하지만 회장님의 이혼, 세무조사, 상속세 납부, 언론에 알려지지 않은 소송, 정치권의 압박, 형제간의 싸움 등 상상을 초월한 일로 딜들이 나온다. 이런 배경을 적절히 알아야, ‘비싸게 쓸지’ 아님 ‘빨리 사줄지’, ‘쥐도 새도 모르게 해줄지’ 등등의 협상 전략의 큰 틀이 잡힌다. 모회사의 현금 상황은 어떤지 채권은행의 담당 직원도 만나보고, 회장님 건강은 괜찮으신지, 유학 가있는 손주는 없는지 탈탈 털어서 진짜 가격 혹은 가격을 뛰어 넘는 가려운 곳을 찾아내야 한다.

자 그럼 우리가 협상을 할 때 절대 하지 말아야할 실수는 무엇일까?

협상의 초짜들이 하는 실수들 (Don’ts)
1. 중재자 없이 직접 붙지 마라


부부싸움이 교통사고 보다 어려운 이유는 중재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자식들이나 강아지나, 건강한 부모님들이 있으면 좀 나은데, 과년한 골드 미스 & 미스터가 만나서 싸우면 보통은 노답이다. 투자의 세계에서도 같은데, 조금 멋있는 말로 P-to-P (Principal-to-Principal)끼리 붙으면 내새끼가 이쁘냐 니새끼가 이쁘냐 식의 자존심 싸움으로 끝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협상의 관점에서도 ‘내가 진짜로 양보할 수 있는 부분’을 ‘슬쩍’ 전달하고 싶은 경우가 있는데, 실력있는 중재자 일수록 ‘신뢰’를 얻어서 ‘저한테만 살짝 이야기해 보세요’를 시전한다. 종종 이런 중재자들에게 주는 수수료 푼돈을 아끼려고 직접 만나는 경우가 있는데 10중 10은 산으로 들로 간다. S급 중재자 (투자은행이나 자문사들)의 경우, 제로섬 협상에 매몰되어 있는 당사자들이 미쳐 보지 못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서 딜을 만들어 내는 경우도 있다.

2. 기선 제압 - 쓸데없는 사과를 하지마라

여러분들이 소시적 나이트 클럽에서 그랬듯, 낯선이와의 승부를 건 협상은 초반 기선 재압이 매우매우 중요하다. 인간은 비언어적 요소와 감정에 지배당하는 동물이다. 어려운 협상일수록 절대 사과할 일을 만들지 말라. 만날 약속을 한다면 10분 20분 일찍 가고, 장소를 정한다면 완벽하게 준비하라. 계약서 오타는 죄악이고, 숫자 틀리는 자는 지옥불에 빠져야 한다. 자잘한 일로 사과를 하다보면 왠지 모르게 위축이 되고, 결정적인 협상의 순간에 큰 손실을 낳는다.

반대로 상대편의 작은 실수도 초반에 빨리 캐치하라. 좋은 꼼수로 일정을 리드할 수 있으면 그걸 좀 타이트하게 관리해서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늦으면 큰 양보를 하듯 아량을 배풀라. 이렇게 라포(Rapport)를 쌓다 보면 결정적인 순간에 꿀같은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다.

3. 감정에 휘둘리거나 징징거리지 마라

협상은 철저히 고관여 프로세스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내 감정 상태는 상대방을 압도할 수 있을 만큼 안정 시키고, 협상 테이블을 감정의 해우소로 절대 활용하지 마라. “당황스럽다”느니, “실망했다”느니 “이럴 줄 몰랐다”느니는 부부싸움에서 조차도 전혀 도움이 되지않는 초자들의 넋두리이자 루저의 상징이다. 우는 애면 사탕 정도야 주겠지만 내 소중한 회사, 내 소중한 자산, 더 소중한 임원 자리라면 징징이한텐 딱 질색이다.

필자는 종종 징징이와 변덕장이를 솎아내기 위해 함정을 파곤 하는데, 난항이 예상되는 국면에서 상대방에게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첫 번째 공격 권한을 한 번 줘보는 것이다. 이럴 때 상식을 벗어난,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안을 제시한다면, 필자는 협상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판단하고 일단 판을 깬다. 그리고는 상대방이 혹은 그 딜이 충분히 익어서 다시 돌아올 때를 기다린다. 안 돌아오면 어떡하냐고? 뭐 그럼 그건 내 딜이 아닌 거다.

좋은 협상가가 된다는 것은, 결국 큰그림을 보고 여유를 가진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충돌보다는 상호 협의가 대화의 끝이 될 때, 필자가 소원하는 지구평화가 이루어 질 것이다. 매일매일 협상을 연습해 보자. 투펏 오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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