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송도에 살면서 서울 역삼동 직장으로 출퇴근하는 최모씨(31)는 최근 구입하려고 한 ‘새 차’를 포기했다. 신혼집 대출이자를 갚기도 빠듯해 점심·저녁을 구내식당에서 해결하는 상황에 차를 구입하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다. 최씨는 매일 버스로 출·퇴근하는 데 4시간을 쓴다. 그는 “내년에 연봉이 늘어도 지출은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고 했다.
○근로·사업소득은 ‘제자리’
고물가·고금리·고환율 영향으로 살림살이가 팍팍해지자 벌이가 증가했어도 씀씀이를 줄이는 가계가 늘고 있다. 술, 담배, 자동차와 같은 사치품, 내구재 소비를 줄이는 가구가 증가하고 소득 격차가 커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통계청이 28일 발표한 ‘2024년 3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3분기 가구당 평균소비성향은 69.4%로, 작년 같은 분기(70.7%)보다 1.3%포인트 낮아졌다. 평균소비성향이 낮을수록 처분가능소득 대비 소비지출이 적다는 뜻이다. 평균소비성향이 전년 대비 하락한 것은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2년 2분기 이후 아홉 분기 만에 처음이다. 평균소비성향은 지난해 1분기부터 줄곧 70%대를 유지하다가 이번에 처음 60%대로 떨어졌다.
가계의 평균 수입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 3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525만5000원으로, 전년 같은 분기(503만3000원) 대비 4.4% 늘어났다. 다만 소득의 질은 나아지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근로소득과 사업소득은 각각 3.3%, 0.3% 증가했는데, 재산소득(51.8%)과 이전소득(7.7%)이 더 큰 폭으로 뛰었다.
가구별 소득 계층 간 격차도 커졌다. 상위 20%의 소득을 하위 20%의 소득으로 나눈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은 5.69배로, 작년 3분기(5.55배)보다 높아졌다.
벌이가 신통치 않자 가계는 지갑을 여는 데 인색해지고 있다. 3분기 가구당 월평균 가계지출은 397만5000원으로 집계됐다. 이 중 ‘소비지출액’은 290만7000원으로 전년 같은 분기 대비 3.5% 늘었다. 하지만 물가 변동분을 제외하면 ‘실질 소비지출’은 1.4% 증가하는 데 그쳤다. 연금 기여금과 이자 비용을 포괄하는 ‘비소비지출액’은 106만8000원으로 0.5% 늘어났다.
○새 차 구입 줄이고 대중교통 이용
소비지출 항목을 실질 증감률로 보면 ‘짠물 소비’ 경향이 두드러진다. 지출 규모가 가장 크게 줄어든 교통(-6.1%) 분야는 ‘자동차 구입’이 1년 전보다 24.8% 감소했다. 새 차 구입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가구가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사치품인 주류·담배도 지출 규모가 전년 동 분기 대비 4.0% 줄었다.지출 규모가 가장 많이 늘어난 소비 항목은 주거·수도·광열(10.8%)이었고, 보건(5.9%)이 뒤를 이었다. 주로 생활에 필수적인 영역에서 소비 지출이 증가했다는 의미다. 외식과 숙박비 등 음식·숙박 지출은 5.6% 증가했고, 입원서비스 지출이 늘어 보건 부문도 7.9% 불어났다.
3분기 가구당 월평균 처분가능소득은 418만8000원으로 전년 동기(390만7000원)보다 5.5% 증가했다. 가계 흑자액도 128만원으로 1년 전(116만2000원)보다 10.2% 늘어 3분기 기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통계청 관계자는 “최근 결혼이 늘면서 가구 소득 대비 지출이 줄어든 영향도 있다”며 “생계가 어려워져 지출이 줄었다고 단정하긴 어렵다”고 했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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