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이 예상 밖으로 금리를 인하한 것은 이 총재 말처럼 경기와 성장 전망이 이전보다 한층 어두워졌기 때문이다. 한은은 우리 경제의 올해 성장률 전망을 2.4%에서 2.2%로 내리는 동시에 미국 대선 이후 불확실성을 반영해 내년 성장률 전망을 2.1%에서 1.9%로 하향 조정하고 2026년 성장률도 1.8%로 예상했다. 잠재성장률(2%)을 밑도는 저성장이 고착화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한은이 성장률 전망을 낮추긴 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내년 1월 20일 취임한 뒤 보편관세를 실행에 옮기고 보호주의를 노골적으로 강화한다면 실제 성장 경로는 한은 예상보다 더 나빠질 수 있다. 골드만삭스, JP모간, 모건스탠리, 노무라증권 등 외국계 투자은행은 내년 한국 경제의 성장률을 한은보다 더 비관적인 1.7~1.8%로 보고 있다. 정부와 한은은 최근까지도 경기 상황에 대해 헛다리를 짚었다. 정부는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고 장밋빛 전망을 내놨고, 한은은 올 3분기 성장률을 0.5%(전 분기 대비)로 예상했다가 실제 성장률이 0.1%에 그쳐 체면을 구겼다. 이젠 섣부른 낙관론을 접고 재정·통화정책의 중심을 경기 대응으로 옮겨야 할 때다.
물론 이런 정책만으로 저성장이 고착화하는 걸 막을 순 없다. 이 총재가 지난 5월 “구조개혁 없이 재정·통화정책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나라 망하는 지름길”이라고 한 건 여전히 맞는 말이다. 하지만 구조개혁만 외치다 한은이 당면한 경기 침체를 외면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건전재정은 중요하지만 도그마는 아니다. 무분별한 현금 살포나 선심성 예산은 막아야겠지만 꼭 필요할 때, 필요한 곳에는 재정을 써야 한다. 그러려고 평소에 재정을 아끼는 것이다. 내년 추가경정예산 편성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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