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덮친 'R의 공포'…SK·롯데·CJ, 자산 팔아 곳간 채운다

입력 2024-12-02 18:07   수정 2024-12-03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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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인사이트 12월 2일 오후 4시 9분

기업이 보유한 현금성 자산이 최근 1년 새 30조원가량 불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그전 1년간 18조원 줄어든 것과 비교하면 확 달라졌다.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고 국내 일부 대기업의 재무 건전성에 노란불이 켜지자 기업들이 유동성 조달에 사활을 걸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일 한국은행과 금융투자협회 등에 따르면 올해 9월 말 비금융 기업이 보유한 현금성 자산(M2·원계열 기준)은 1125조4320억원이었다. 역대 최대로 지난해 9월 말에 비해 30조8280억원 늘었다. M2는 현금과 요구불예금, 수시입출금식 예금, 2년 미만 정기 예·적금 등을 포함한 통화지표다. 바로 현금화할 수 있는 유동성을 가리킨다.

기업들은 자산 매각, 회사채 발행, 유상증자 등을 총동원해 현금을 쌓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이날까지 회사채 순발행액(발행액-상환액)은 18조2713억원으로 작년 동기 대비 81.2%(8조1924억원) 증가했다. 지난달 회사채 순발행액은 3조6155억원이었다. 11월 기준 역대 최대다.

올해 들어 유형자산·비유동자산 처분을 공시한 기업은 대한항공, 태영건설, 대한해운, KG스틸, 한일시멘트 등 39곳이다. 전년 동기(25곳) 대비 56% 늘었다. 경기 둔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대내외 불확실성에 따라 금리와 환율의 출렁임이 거세지자 그만큼 ‘현금 안전판’을 쌓으려는 유인이 커졌다.

대기업이 핵심 자산을 매각하는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롯데그룹은 롯데시티호텔 2~3곳과 롯데렌탈, 롯데백화점 부산 센텀시티점 매각에 속도를 내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중국 광저우 공장을 팔았고, 포스코는 중국 제철소인 장자강포항불수강 매각에 나섰다.
기업들, 유동성 조달 사활…1년새 30조원 늘어
골프장·선박·항공기도 매각…사업 재편 속도내는 기업들

기업들이 현금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경기 위축 속도가 빨라지는 데다 금리와 환율이 시시각각 바뀌는 등 불확실성이 커진 결과다. SK 롯데 CJ 등 대기업은 ‘현금 안전판’ 확보를 위해 자산 매각을 비롯한 사업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달러 조달 박차…외화빚 250조원 육박
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에너지솔루션 현대자동차 삼성바이오로직스 네이버 등 10대 비금융 상장사가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지난 9월 말 기준 178조7909억원이었다. 작년 말보다 7조5223억원가량 불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의 현금성 자산 확보 움직임이 두드러졌다. 9월 말 기준 삼성전자의 보유 현금은 103조7765억원으로 국내 기업 가운데 가장 많았다. 작년 말보다 11조9776억원 증가했다. SK하이닉스가 쥐고 있는 현금은 10조8579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1조9370억원 늘었다. 두 회사는 매년 수십조원대 규모로 설비 투자를 하는 만큼 현금을 넉넉하게 쌓아뒀다.

기업들은 보유 자산을 줄매각하는 형태로 현금을 쌓았다. 올 들어 유형자산·비유동자산 처분을 공시한 기업은 39곳으로 전년 동기(25곳) 대비 56.0% 늘었다. 대한항공은 올 5월 항공기 보잉747 5대를 9183억원에 매각한다고 공시했다. 미국 방위산업체인 시에라네바다가 매수자다. 대한해운은 보유한 선박 2척을 1203억원에 처분한다고 10월 밝혔다. KG스틸은 당진 공장 부지를 1100억원에 정리한다고 지난달 공시했다.

기업들은 달러 조달에도 힘을 쏟고 있다. 달러 가치가 연일 널뛰기 장세를 보이는 것과 맞물린다. 올해 9월 한국의 비금융기업 대외채무 합계는 1761억5100만달러(약 246조6110억원)로 집계됐다. 지난해 동기보다 102억8900만달러(약 14조4040억원) 불었다. 대외채무란 기업이 갚아야 하는 달러를 비롯한 외화 빚(외화차입금, 외화사채, 유전스 등)으로 주로 달러 차입금으로 구성됐다. LG전자는 올 들어 8억달러 규모의 외화채를 발행했다. 이 회사가 외화채 발행에 나선 것은 2012년 이후 처음이다. 기업공개(IPO)를 통해 현금을 조달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기업들이 올 들어 지난달까지 IPO로 조달한 자금은 4조원을 웃돈다.
대기업들 자산 줄매각
조달 행보는 더 빨라질 전망이다. 대기업들이 구조조정 차원에서 자산을 줄매각하고 있어서다. CJ제일제당은 바이오 사업 부문의 매각을 추진 중이다. LG화학과 롯데케미칼은 나프타분해설비(NCC)를 매물로 내놨다. 롯데케미칼은 말레이시아·파키스탄 법인 등의 매각도 추진 중이다. GS건설은 스페인 수처리 업체인 GS이니마와 GS엘리베이터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중국 광저우 LCD 공장 매각에 나섰다.

회사채 발행액도 큰 폭으로 늘었다. 지난달 회사채 순발행액은 3조6155억원으로 11월 기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투자금 확보를 위해 IPO 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곳도 많다. LG CNS는 이날 한국거래소의 신규 상장 예비 심사를 통과하고 내년 1호 상장을 목표로 유가증권시장 입성 절차를 밟고 있다. DN솔루션즈도 한국거래소에 예비 심사 신청서를 제출했다. 증권업계는 LG그룹의 정보기술(IT) 계열사 LG CNS와 DN오토모티브의 공작기계 사업 부문 DN솔루션즈의 시가총액이 각각 5조~6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SK그룹의 윤활유 사업 계열사 SK엔무브는 내년 증시 입성을 바라보고 있다. LS그룹 계열사인 LS에식스솔루션즈도 올해 안에 증권사를 대상으로 RFP를 발송하고 증시 상장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김익환/배정철/장현주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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