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곤 실레의 꿈이 서울에서도 실현돼 감격스럽습니다" ['비엔나 1900'展]

입력 2024-12-03 09:53   수정 2024-12-03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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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빈에서 에곤 실레가 그린 그림에 2024년을 살아가는 수많은 한국인이 깊게 몰입하는 이유가 뭘까요?” -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관람객

“무엇이 우리 감정을 휘젓는지 같이 생각해 봅시다. 실레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깊이 파고들었어요. 오늘날에도 그의 작품이 사랑 받는 이유죠.” - 한스 페터 비플링어 레오폴트 미술관장

‘전쟁은 끝났고, 나는 이제 가야 해. 내 그림들은 전 세계 미술관에 걸릴 거야’.

세기말 청춘의 초상을 그린 화가 에곤 실레가 스물 여덟의 짧은 생을 마치기 전 남긴 마지막 한 마디는 시공간을 초월한 예술적 교감에 대한 확신이었다. 지난 2일 서울 용산동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특별전을 찾은 관람객과 만난 한스 페터 비플링어 오스트리아 레오폴트 미술관장은 실레의 유언을 상기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이 서울에서 실현됐네요. 한국에서 이렇게나 사랑받는단 사실이 감격스럽습니다.”



비플링어 관장은 이날 특별전 개막을 기념해 마련된 특별강연의 연사로 나섰다. 전시를 공동기획한 레오폴트 미술관이 1900년을 전후해 빈에서 태동한 빈 분리파와 표현주의 명작을 두루 소장한 만큼, 전시 주요 작품을 설명하는 특별 도슨트 역할을 자처한 것.

세계에서 가장 많은 220여 점의 ‘에곤 실레 컬렉션’을 비롯해 구스타프 클림트, 오스카 코코슈카 같은 동시대 거장들의 작품이 즐비한 레오폴트 미술관은 이번 전시에 실레의 대표작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 등 191점을 걸었다. 원화만 100점이 넘는 역대급 컬렉션으로, 실레와 클림트의 작품이 한국에 전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개막 첫 주말 6000명 넘는 관람객이 몰리며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수용 가능 인원을 한도까지 채운 ‘흥행 대박’ 전시답게 강연도 발 디딜 틈 없었다. 평일 낮 시간에도 불구하고 20대 대학생부터 60대 노부부까지 미술 애호가들이 몰리며 400석이 넘는 대강당은 일찌감치 만석이 됐다.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들은 발길을 돌리는 대신 복도 계단에 옹기종기 앉거나 서서 강연을 들었다.

특별강연을 챙겨야 할 만큼 미리 전시를 보고 온 관람객에겐 그림들이 강렬하게 다가왔고, 곧 전시장에 들를 예정인 이들에겐 기대감이 컸다는 뜻이다. 미술사를 전공 중이라는 한 20대 관람객은 “유료로 열렸어도 들으러 올 정도로 값진 강연”이라며 “개인적인 전시 감상과 비교해보고 싶어 왔다”고 말했다.



두 시간가량 이어진 강연에서 비플링어 관장은 미술관 창립자인 루돌프 레오폴트가 어떻게 실레와 클림트의 작품을 수집하게 됐고, 1900년대 빈이 미술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설명했다. 비플링어 관장은 “1950년대 젊은 의대생이던 루돌프가 작품을 수집하기 전까지 실레는 당대 미술계에서 알아주는 작가가 아니었다”면서 “실레를 알리겠다는 각오로 뉴욕, 런던, 파리 등에 전시를 열면서 빈 표현주의가 명성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비플링어 관장이 전시 주요 작품을 소개하자 관람객들의 집중력은 한층 높아졌다. 전시 대표작 중 하나인 ‘꽈리열매를 한 자화상’을 화면에 띄운 비플링어 관장이 “에곤 실레는 그 어떤 작가보다 자화상을 많이 그렸다”며 “수직선, 수평선, 사선 등 그림에 나오는 선들이 균형감 있고 색깔도 조화가 맞아떨어진다”고 하자 좌중에서 작은 탄성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사상 처음으로 해외 전시에 나온 막스 오펜하이머, 실레보다 한발 앞서 표현주의를 구사했던 리하르트 게르스틀이 그린 자화상 작품들도 눈길을 끌었다.



양과 질 모두 역대 국내 전시 가운데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 전시를 둘러본 관람객답게 강연 막바지에 진행된 질의응답도 수준급이었다. 한 관람객이 실레 등 빈 표현주의 화가들이 동시대 심리학자 지크문트 프로이트의 이론과 관련 있는지를 묻자 비플링어 관장은 “프로이트의 저서 <꿈의 해석>이 아르누보 양식에서 표현주의로 변하는 데 큰 영향을 줬다고 본다”고 답했다.

누드 드로잉 등 실레의 성적인 욕망이 드러나는 작품들을 거론하며 외설과 예술의 경계에 대해 묻는 질문에는 “예술은 사회를 비출 자유가 있고, 이런 논쟁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맞받기도 했다.

비플링어 관장은 강연을 마치며 “연간 50만 명에 달하는 레오폴트 미술관 전체 관람객의 4%가 한국인이고, 에곤 실레의 작품에 높은 관심을 보인다”면서 “특별전을 공동기획한 국립중앙박물관과 한국경제신문사, 그리고 전시를 찾은 한국 관람객들에게 큰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한편, 국립중앙박물관은 특별전과 연계한 행사로 오는 13일 미술사연구회와 함께 1900년대 빈의 예술을 조명하는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전시는 내년 3월 3일까지 열린다.

유승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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