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얻어낸 민주주의이건만 생애 또 한 번의 계엄령을 겪을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서울 시민 박창환 씨·67)
4일 오전 1시께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되자 시민들의 환호와 분노의 목소리가 뒤섞여 터져 나왔다. “대한민국 만세”라는 함성과 “정부가 시민에게 이러면 안 되지 않느냐”는 통곡이 함께 들렸다. 세대와 성별을 가리지 않고 모인 시민들은 “민주주의 후퇴를 막겠다”며 동이 튼 뒤에도 차가운 거리를 지켰다.
집회에 참가한 50대 이모씨는 “뉴스를 보고 참담한 심정에 나왔다”며 “군부독재 시절도 아닌데 계엄령 선포가 가능한지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경기 안산에서 온 자영업자 최영은 씨(38)는 “가게는 남편에게 맡겨두고 두 시간 지하철을 타고 왔다”며 “윤 대통령이 또다시 계엄령을 선포하거나 극단적으로 갑자기 전쟁이라도 일으키는 건 아닌지 무섭다”고 했다.
외국인도 거리 시위에 동참했다. 워킹홀리데이로 한국에 왔다는 독일인 조슈아 네트(29)는 이날 일곱 시간 동안 국회 앞을 지켰다. 그는 “민주주의라는 소중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시위에 참가했다”고 말했다. 그와 함께한 세이풀라 세커(25)도 “힘겹게 민주정을 이뤄낸 독일처럼 한국 시민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계엄령 발표 직후 ‘패닉’에 빠졌다. 서울 논현동에 사는 30대 직장인 이모씨는 “황당하다는 생각부터 들었다”며 “새벽까지 계엄을 취소한다는 대통령 담화를 지켜본 뒤 출근했다”고 했다. 일부 시민 사이에서 필수품 사재기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시민들은 대체로 차분했다.
자영업자 김영기 씨(44)는 “계엄사령부에서 ‘처단한다’는 말이 나와 황당했지만 몇 시간 만에 계엄령이 취소되는 것을 보고 그래도 희망은 있다는 생각에 안도했다”고 했다.
경남경찰청 소속 B씨는 이날 경찰 내부망에 “국민을 적으로 돌린 정권의 편을 들면 당장은 좋을 수 있지만 머지않아 국민이 경찰을 적으로 여길 것”이라며 “1980년 광주에서 시민을 지킨 고(故) 안병하 치안감을 생각하자”고 적었다. 고인은 1980년 5·18 당시 전라남도경찰국장으로 재직하며 신군부의 시위대 강경 진압 지시와 발포 명령을 거부했다. 강원청 소속 C씨도 계엄령 취소 전에 “내가 경찰청장이라면 지금 즉시 가용 경찰력을 총동원해 국회를 지키고, 의원들이 헌법에 따라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보호할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대학가에서도 교수와 학생의 계엄령 비판이 잇따랐다. 이날 오후 2시 고려대 중앙도서관에는 교수와 학생 약 400명이 모여 시국선언을 한 뒤 캠퍼스 내에서 구호를 외치며 행진했다. 이들은 윤 대통령 즉시 직무 정지와 탄핵, 계엄에 동조한 군 수뇌부 엄벌 등을 요구했다. 전국국공립대학교수회연합회는 이날 시국 성명서를 내고 계엄령 선포를 ‘중대한 범죄행위’라고 규정했다. 국교련은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과 비상계엄 선포에 관여한 자들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처벌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연세대에서도 계엄령을 비판하는 대자보 서명 운동이 시작됐다. 서울대 총학생회는 “비상계엄 선포는 대한민국의 자유민주 헌정 질서를 짓밟는 행위”라며 “기꺼이 저항하고 불의를 타도할 것”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대학가에선 한동안 없었던 반(反)정부 학생운동 정국이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 주요 대학 총학생회장은 이날 저녁 연세대에 모여 향후 대응책을 논의했다.
안정훈/김다빈/이혜인/정희원 기자 ajh6321@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