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제 근로계약은 약정된 기간이 도래하면 근로관계가 자동적으로 종료되는 계약이다. 이것이 기간제 근로계약의 본질이고, 기간을 정함이 없는 근로관계(‘무기계약’이 정확한 줄임 표현이겠지만, 이하 편의상 ‘정규직’이라고 한다)와 차이가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판례는 법률상 아무런 근거규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갱신기대권’을 인정함으로써 예외적으로 사용자의 추가적인 계약 체결(채용)을 강제하고 있다. 이러한 갱신기대권은 생각보다 자주 소송으로 다투어지며, 소송상 갱신기대권에 근거하여 부당해고가 선언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렇다면 갱신기대권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일본의 판례법리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대법원이 처음 갱신기대권과 유사한 언급을 한 것은 1994년 연세어학당 사건인데, 당시에는 ‘장기간에 걸쳐서 계약의 갱신이 반복되어 그 정한 기간이 형식에 불과하게 된 경우에는 사실상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의 경우와 다를 바가 없다’라고 하여 ‘사실상 무기계약이론’을 제시하였다(대법원 1994. 1. 11. 선고 93다17843 판결). 이는 1974년 일본 최고재판소 판례 법리(東芝柳町工場事件)와 유사하다. 2005년 이후 대법원은 ‘근로계약의 기간을 정한 것이 단지 형식에 불과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관련 규정상 갱신의 근거가 존재하거나 규정상 근거는 없더라도 갱신에 관한 신뢰관계가 형성된 경우에는 갱신에 대한 정당한 기대권이 인정되며, 그럼에도 합리적 이유 없이 갱신을 거절하는 것은 부당해고와 같다’라고 하는 현재의 갱신기대권 판례 법리를 제시하였다. 이는 1986년 일본 최고재판소 판례 법리(日立メディコ事件)와 닮아 있다.
그런데 위 판례 법리가 등장한 후인 2007년, 우리 입법자는 기간제법을 제정하였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기간제법은 입법 당시부터 ‘사용자는 2년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범위 안에서(기간제 근로계약의 반복갱신 등의 경우에는 그 계속근로한 총기간이 2년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범위 안에서) 기간제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다’는 ‘총 기간 2년 제한’ 규정을 두고 있다(동법 제4조 제1항). 즉, 입법자는 기존 계약직의 갱신에 관련된 논란을 정리하고 계약이 반복 갱신된 경우에도 총 사용기한을 2년으로 제한할 것을 의도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기간제법의 입법 후에도 법원 및 노동위원회는 갱신기대권 법리를 계속 적용하였다. 오히려 ‘갱신기대권’이 계속 고용기간 2년을 초과하여 작용하게 되자 기간제법 제4조 제2항(정규직 전환 간주)과 결합되어 ‘정규직 전환 기대권’이라는 새로운 기대권으로 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이제 갱신기대권에 관한 법리는 종래의 작용범위를 벗어나 또다른 기대권을 인정하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대법원은 2023년 ‘정년에 도달한 근로자가 정년 후 재고용에 대한 기대권’을 가질 수 있음을 인정하였다(대법원 2023. 6. 1. 선고 2018다275925 판결). 동 판결에서 기대권의 인정 근거로 거론된 것은 ‘근로계약, 취업규칙, 단체협약 등에서 정년에 도달한 근로자가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재고용된다는 취지의 규정을 두고 있는지 여부’ 및 그런 규정이 없더라도 ‘재고용 실시 경위 및 기간, 당해 사업장에서 정년 후 재고용된 비율, 재고용이 거절된 근로자가 있는 경우 거절 사유 등’이었는바, 이는 갱신기대권에서 논의되는 신뢰관계의 인정 근거와 유사하다.
그 외에도 2021년 대법원은 ‘하청업체 근로자의 고용승계 기대권’을 인정하였다. 즉, 원청업체가 용역업체를 변경하더라도 기간제 근로계약으로부터 해당 업무를 수행하던 하청 근로자에게 신규 용역업체와 새로운 근로관계가 성립될 것이라는 신뢰관계가 형성되었다면 근로자에게는 새로운 용역업체로의 고용 승계에 대한 기대권이 인정될 수 있다고 보았다(대법원 2021. 4. 29. 선고 2016두57045 판결). 여기서 판례가 고용승계에 관한 신뢰관계의 인정근거로 언급한 요소는 ‘고용을 승계하기로 하는 계약조항의 존부’와 그 외 ‘고용승계 관행 등 제반 사정 등’으로 갱신기대권에서의 신뢰관계 인정 근거와 매우 흡사하다. 이처럼 갱신기대권은 법률상 근거가 없는 예외적 법리임에도 불구하고 작용 범위를 계속해서 넓혀가고 있다.
이처럼 명문의 법적 근거가 없음에도 갱신기대권은 이미 널리 적용되고 있다. 그럼에도 사용자가 갱신기대권의 요체를 알지 못한 채 계약직을 사용하였다가 분쟁을 겪는 경우를 많이 본다. 회사가 계약직의 갱신기대권 인정 가능성을 낮추려면, 가장 먼저 사내규정, 근로계약 등 계약기간 만료에 따라 근로관계가 해소된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갱신 또는 전환에 관한 규정을 두지 않아야 한다. 채용 공고에도 정규직 전환 등에 관한 언급이 들어가는 경우가 있는데, 이 역시 전환 기대권의 근거로 주장되는 경우가 많다. 인사관리 정책상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면 문언상 기대권의 근거로 주장될 여지가 있는 언급은 삼가야 한다.
또한, 다른 임직원들이 계약직 직원에게 동기부여 등 차원에서 정규직 전환 가능성을 언급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역시 기대권 주장의 근거가 될 여지가 있다. 따라서 상급자·관리자·인사담당자 등이 계약직 직원의 오해를 일으키지 않도록 ‘메시지 관리’를 할 필요가 있다. 사업주나 경영진 역시 갱신·전환에 관하여 인사팀·직속상사 등과 상충되는 메시지를 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갱신·전환 기대권이 인정될 경우에 대비하여, 거절에 ‘합리적 이유’가 있음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도 준비해 두어야 한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객관성·합리성·공정성을 갖춘 근무평정을 실시하는 일이다. 근무평정 외에도 고려될 사항이 있다. 판례는 사업의 성격상 인력을 탄력적으로 조절할 필요성이 있는데 업무량이 감소된 경우(서울고등법원 2008. 12. 10. 선고 2008누18771 판결)나 계약직 근로자를 고용할 계기가 없어진 경우(서울행정법원 2011. 8. 25. 선고 2011구합5759 판결)에는 갱신 거절의 합리성을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근무평정 외에도 이와 같이 갱신거절에 사업경영상의 필요성이 있음을 입증할 수 있는 근거를 준비하는 것도 고려해 볼만 하다.
특히, 최근 들어 계약 만료를 앞둔 계약직 근로자가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한 후에 갱신·전환이 거절되면 이를 ‘신고를 이유로 하는 불리한 처우’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근로기준법 제76조의3 제6항). 이 경우 이슈는 부당해고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형사처벌에까지 이르게 되므로, 한층 더 각별한 관리와 주의를 요한다.
이처럼 판례는 일정한 요건 하에 갱신기대권이 있는지 여부를 먼저 판단하고, 갱신기대권이 있다면 합리적 이유가 있는지를 심사하여 갱신 거절의 정당성 여부를 판단한다. 그런데 이러한 법리는 법률상 아무런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용자가 일정한 기대를 품게 했다는 이유로 계약이 종료된 근로자와 근로계약을 체결(채용)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의무 부과는 결코 쉽게 정당화 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적어도 갱신·전환의무를 발생시킬 수 있는 명시적인 규정이 존재하거나 사업장 내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정도로 갱신·전환에 관한 보편적 관행의 확립되었다는 매우 예외적인 사정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계약 만료시 계약관계는 ‘원칙’대로 자동 해소되어야 한다고 본다.
김종현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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