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정국에 따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기업의 자금 조달에 경고등이 켜졌다. 투자심리가 급속히 얼어붙어 대표적 자금 조달 창구인 회사채와 공모주 시장 수요가 확 쪼그라들었다. 혼란이 장기화하면 비우량 기업을 중심으로 유동성 위기가 고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0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직후인 지난 4일부터 9일까지 회사채 2412억원이 순상환됐다. 이 기간 회사채 발행액보다 상환액이 많다는 뜻이다. 이달 초까지만 해도 회사채 발행이 잇따르며 시장에 훈풍이 불던 것과 대비된다. 올 10월(3조754억원)과 11월(3조5700억원)에는 회사채가 각각 3조원 넘게 순발행됐다.
계절적으로 연말은 북 클로징(회계 장부 마감)에 따라 기관투자가의 신규 투자가 줄어드는 시기다. 여기에 정치적 불확실성까지 겹쳐 일찌감치 투자를 중단하는 기관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최근 시장 금리가 하락했지만 일부 대기업조차 회사채와 기업어음(CP) 발행에 애를 먹고 있다. 한 대형 건설사는 10월 말까지 3개월 만기 전자단기사채를 연 4%대 중반 금리 수준에서 발행했지만, 전날 시장에서 연 7% 금리에 투자자를 모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가가 급락하며 주식시장을 통한 자금 조달 통로도 막혔다. 최근 기업공개(IPO)를 준비하던 기업들의 상장 철회가 잇따르고 있다. 이달 들어 반도체 기업 아이에스티를 포함해 5개 기업이 기업공개 일정을 내년으로 연기했다.
뜨거웠던 회사채 시장 '급냉각'…증시 불확실성에 IPO 미뤄
하지만 3일 밤 10시23분께 비상계엄이 선포된 후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4일부터 9일까지 회사채는 2412억원어치 순상환됐다. 만기가 돌아온 회사채보다 신규 발행액이 적었다는 의미다.
계절적으로 연말은 북클로징(회계장부 마감)에 따라 기관투자가의 신규 투자가 줄어드는 시기다. 대부분 투자자가 12월 중순께 북클로징에 들어가지만 올해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결산 시기가 앞당겨졌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연말엔 보험사 등 2금융권을 중심으로 채권 발행 물량이 소화돼야 하지만, 대부분 기관이 회사채 신규 투자를 사실상 중단한 상태”라며 “연말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시장 분위기가 매우 좋지 않다”고 말했다.
ABL생명(후순위채)과 효성화학은 각각 1000억원, 3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하기 위해 수요예측을 했지만 단 한 건의 주문도 들어오지 않아 전액 미매각됐다. 김명실 iM증권 연구원은 “지난달까지만 해도 고금리 비우량 회사채 수요가 많았는데 이달 들어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며 “채권시장에서도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해지면서 국고채와 우량 회사채를 중심으로 매수세가 몰리고 있다”고 했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장기화하면 비우량 회사채를 중심으로 금리가 상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한 증권사 채권발행시장(DCM) 임원은 “최근 외국인 자금이 채권시장에서 이탈할 조짐을 보이는 만큼 국채와 회사채 금리가 뛰고, 그만큼 발행 기업의 조달 여건은 나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신용등급이 휘청이는 일부 기업과 산업의 자금 조달 통로는 더 좁아질 것이란 관측이다. 일부 기관에서는 ‘석유·화학, 건설 업종의 채권 투자를 중단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내년 IPO 분위기 호전을 기대하고 수요예측을 뒤로 미룬 기업들은 발을 구르고 있다. 10~11월 케이뱅크와 동방메디컬, 미트박스글로벌, 씨케이솔루션, 오름테라퓨틱 등 5개 기업이 상장 일정을 미뤘는데 비상계엄 사태로 일정을 잡기가 더 어려워졌다.
서형교/김익환/최석철/배정철 기자 seogyo@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