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작가.’
전 세계 문학계가 아일랜드 출신 소설가 클레어 키건(56)에게 보내는 찬사다. 그의 문학은 시공간을 초월하지 않는다. 소설마다 라디오나 TV 프로그램 묘사를 통해 동시대의 이야기가 지속적으로 흐른다.
1980년대 초중반을 묘사하고 있는 그의 소설 <맡겨진 소녀>와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가톨릭이 일반인에게 가한 압력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다. 당시 아일랜드에서는 이혼과 피임이 금지돼 ‘원치 않는 아이’가 숱하게 태어났다. 미혼모의 영아 살해나 천주교 복지시설의 아동학대, 천주교 신부의 성폭력 사건도 잇따랐다. 권력화한 종교의 힘 때문에 이런 사실을 드러내놓고 이야기하는 건 불가능했다. <맡겨진 소녀>에서는 부모는 있지만 가정에서 최소한의 돌봄도 받지 못한, 몇 번째 딸인지도 모를 소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서는 수녀원이 운영하는 세탁소에서 강제 노동을 당하는 여성들이 나온다. 주인공 빌 펄롱의 아내가 “살아가려면 모르는 체해야 하는 것들”이라고 표현한 이들은 대부분 10~20대 초반의 미혼모로 그려진다.
영화 ‘오펜하이머’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킬리언 머피(48)가 다섯 명의 딸을 둔 가장, 빌 펄롱을 맡았다. 인류를 구한다는 명목으로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게 할 수도 있는 선택을 앞두고 고뇌하는 명연기를 선보였던 그는 이번 작품에서도 자칫하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선택을 놓고 고민한다. 머피는 아일랜드 출신으로, 작가 키건이 그리는 시대의 부조리 속에서 자라난 인물이기도 하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읽고 머피가 키건에게 영화화를 설득한 건 그런 이유에서였을지도 모른다.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원작을 충실히 따랐다. 작은 석탄회사를 운영하는 빌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석탄을 배달하러 간 수녀원에서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면서 관객의 숨통을 조여온다. 작품 속 수녀원은 18세기부터 20세기 말까지 정부의 협조와 묵인 아래 가톨릭 수녀원이 운영하며 불법적인 잔혹 행위를 저질렀던 막달레나 세탁소가 배경이다. 수녀원 석탄 창고에 간 빌은 그곳에 갇혀 있는 10대 소녀 세라를 발견한다. 그는 출산을 5개월 앞둔 미혼모였다(소설에서는 이미 출산한 채 수녀원에서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 신세로 그려진다). 수녀들은 굳은 표정으로 세라를 압박하고 “다른 여자아이들이 나를 가뒀다”는 거짓 증언을 빌 앞에서 하게 만든다. 무언가 문제를 제기하고 싶은 표정의 빌에게, 원장 수녀는 그의 아내 이름이 쓰인 크리스마스카드를 건넨다. 카드 속에는 거금의 지폐가 있었고, 이는 이곳에서 보고 들은 것을 발설하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과도 같은 것이었다.
크리스마스 새벽, 빌은 남은 석탄을 수녀원에 배달하러 들른다. 창고에서 그는 “지금이 낮인가요, 밤인가요”라며 몸을 떠는 세라를 또다시 만난다. 아이를 일으킨 빌은 그길로 세라를 집으로 데리고 간다. 집으로 걸어가는 동안 마을 사람들이 두 사람을 빤히 쳐다보지만 빌은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빌은 자신의 집 현관문 앞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세라에게 손을 내민다.
키건의 문장은 군더더기가 없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그의 작품 가운데 분량도 가장 짧다. 역대 부커상 후보에 오른 가장 짧은 소설로 알려져 있을 정도다. 머피는 눈빛과 행동만으로 문장 사이에 응축된 온도까지 고스란히 전달했다.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행동에 앞서, 고뇌하는 빌의 내면을 이보다 더 잘 보여줄 순 없었으리라.
미혼모들이 낳은 아기들의 울음, 수녀원에 갇힌 아이들의 비명이 뜰 앞의 요란한 거위 울음에 묻히는 장면은 극적이다. 그 가운데 빌이 내민 손길은, 세라에겐 다른 세상을 만나는 구원의 손길이자 키건의 문학이 왜 세계적 명성을 얻었는지 일깨워주는 장면이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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