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곤 "나만 옳다하고 상대 악마화하는 현실, 종교전쟁과 닮아"

입력 2024-12-12 17:25   수정 2024-12-12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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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 교양관의 한 강의실. 노(老)교수가 들어서자 100명 넘는 학생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강렬한 빨간색과 파란색이 교차한 사선 줄무늬 넥타이가 눈에 띄었다. “너무 마음에 안 드는 디자인을 오늘 일부러 꺼내 입었다”며 넥타이를 소개하자 좌중에서 웃음이 터졌다. 넥타이에는 존 스튜어트 밀, 존 로크, 토머스 홉스의 초상이 반복된 무늬가 있었다. 서양정치사상을 가르쳐온 교수를 위해 10여 년 전 제자들이 특별 제작해 선물한 넥타이였다.

이날은 30여 년간 강단을 지킨 김병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사진)의 학부생 대상 ‘서양근대정치사상’ 마지막 강의였다. “무작정 진도를 나가기엔 시국이 엄중하다”며 그간 가르친 서양정치사상사를 총정리하는 강의를 1시간여 진행했다. 김 교수는 내년 1월 퇴임을 앞뒀다.

김 교수는 1982년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석사, 영국 케임브리지대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4년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시작해 모교에 몸담았다.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장, 한국정치사상학회장 등을 지내며 주로 강의와 학술 활동에 매진했다. 쉽지 않은 철학적 내용을 다룸에도 전공자뿐 아니라 타 과 수강생들에게도 ‘명강의’로 꼽힌다.

김 교수는 요즘 으레 질문받을 법한 ‘계엄’이나 ‘탄핵’과 같은 단어는 단 한마디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다만 강의 시작 전 영국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한 쪽을 화면에 띄운 것으로 그 답을 대신한 듯했다. ‘그릇된 목표를 위해, 또는 관여해서는 안 될 일을 위해 권력을 휘두를 때 그 횡포는 다른 어떤 정치적 탄압보다 더 가공할 만한 것이 된다’는 구절이었다.

그는 “정치사상이란 사람의 생각을 탐구하는 학문”이라며 “이론가들이 이미 사망했으니 그들이 남긴 텍스트를 가지고 해석해야 하는데, 이 해석을 두고 서로 자신이 옳다고 싸우고 죽이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해석 간 경쟁조차도 자기만 진정하고 남은 틀렸다고 다툰 경우가 많았다”고 짚었다.

김 교수는 정치사상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대부분 사회가 자기주장이 옳다고 생각하는 강력한 자기 확신과 상대에 대한 악마화에 빠져 있다”며 “흡사 종교전쟁과 닮아 있는 현실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보편적이고 영원한 가치란 없다. 수많은 사상이 오류로 판명되고 현실정치에서 수정을 거듭한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박종필/사진=임형택 기자 j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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