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장기간 입원하면 집을 팔아야 한다고 할 정도로 의료제도에 대한 악명이 높다. 충치 치료에만 몇백 달러가 들어간다. 그런데 보험은 65세 이상이 대상인 메디케어, 저소득 빈곤층이 대상인 메디케이드 등을 제외하곤 대부분 민간 보험으로, 전 국민 대상의 공적 건강보험은 부실하다. 이런 상태에서 보험회사가 보험금 지급을 차일피일 미루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거부한다면 가입자의 분노는 어떻겠는가.
미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건강보험회사 CEO 살인 사건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문제의 유나이티드헬스케어는 미국 최대 건강보험회사로 보험금 지급 거절 비율 또한 업계 1위다. 피살된 브라이언 톰슨 CEO 취임 이후 치료의 사전 승인 거부율이 2020년 10.9%에서 지난해 32%로 올랐다. 회사 이익은 120억달러(약 17조원)에서 160억달러(약 23조원)로 뛰었다.
용의자 루이지 맨지오니는 살인범이 아니라 영웅으로 추앙받는 분위기다. 경찰의 추적을 방해하기 위해 지명수배된 그의 복장과 똑같이 입고 다니자는 캠페인이 있었을 정도다. SNS에는 보험사 CEO에 대한 위로가 아니라 웃음 이모티콘으로 도배가 됐다. 반면 그가 붙잡힌 맥도날드 매장은 악성 리뷰와 별점 테러로 범벅이 됐다. 그가 아이비리그 졸업에 명문 재력가 출신이라는 ‘알파 메일’로 알려지자 거의 배트맨 대접이다. 체포 당시 그의 자필 메모에는 “이 기생충들(보험회사)은 자업자득이다”라고 쓰여 있었다.
이번 사건은 미국 의료제도와 건강보험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어떠한지를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건강보험제도를 갖고 있지만 얌체 의료쇼핑 등으로 재정에 빨간불이 들어오고 있다. 건강한 시민의식으로 소중한 제도를 지켜가야 한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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