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와 달달 케미' 日 신났다…한국만 낙동강 오리알 [이상은의 워싱턴나우]

입력 2024-12-17 16:38   수정 2024-12-17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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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취임 전에 만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트럼프 당선인은 16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시바 총리와 취임 전에 회동할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받고 “그들(일본)이 원한다면 그렇게 할 것”이라고 답했다.

전날 부인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와 함께 아베 신조 전 총리의 부인인 아베 아키에 여사와 만난 트럼프 당선인은 이날 손정의 소프트뱅크 그룹 회장과 함께 기자회견에 나섰다. 두 사람은 이 자리에서 소프트뱅크 그룹의 1000억달러(약 143조원) 규모 대미 투자를 발표했다.
○트럼프-손정의 ‘밀월’
기자회견을 시작한 지 2분30초 경 트럼프 당선인의 소개로 마이크를 잡은 손 회장은 “트럼프 당선인의 위대한 승리를 축하한다”며 “트럼프 당선 후 미국 경제에 대한 자신감이 대단히 강해졌다”고 추어올렸다. 또 “1000억달러 투자와 10만개 일자리 창출을 약속하게 되어 매우 흥분된다”며 “세계를 다시 평화롭게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분위기는 아주 훈훈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투자금액을 두 배로 늘려서 2000억달러로 해달라고 가볍게 농담을 던졌고, 손 회장은 웃으며 “역시 대단한 협상가”라면서 “당신의 리더십과 나의 파트너십으로 이 일이 되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소프트뱅크그룹은 주로 인공지능(AI) 등 기술 분야 투자를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CNBC 등 외신들은 소프트뱅크그룹이 앞서 챗GPT를 운영하는 오픈AI에 15억달러를 투자한 것 등도 모두 '1000억달러' 계산에 포함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베 여사와 손 회장의 콤보 작전은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 언론은 이시바 총리가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에 비해 트럼프 당선인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고 꾸준히 우려해 왔다. 대선 결과가 확정된 지난달 6일 트럼프 당선인에게 각국 정상의 취임 축하가 쏟아졌을 때 이시바 총리는 윤석열 대통령보다 늦게, 훨씬 짧은 시간(5분) 통화했다. 소극적인 스타일의 이시바 총리를 아베 전 총리의 골프 외교와 비교하며 비판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트럼프 당선인은 먼저 손 회장에게 “(회견을) 보고 있을 일본 국민들에게 할 말이 있느냐”며 그를 이끌었고, 손 회장은 “일본 국민들이 미국과 일본의 파트너십을 더욱 강화하게 된 것을 자랑스러워할 것이라 확신한다”면서 “이것을 내가 실현시키게 되어 매우 기쁘다”고 화답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 분위기를 ‘취임 전 이시바 총리를 만날 수 있다’는 발언으로 이어갔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날 일본 주재 미국 대사로 조지 글래스 전 포르투갈 대사를 임명했다. 부동산 개발업자 출신인 그는 포르투갈 대사로 근무하면서 중국 진출을 견제하고 중국을 비판하는 글을 기고한 대중 매파다. 한국대사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트럼프 당선인 측은 최근 한국 외교가에 탄핵정국 상황에서 누구와 접촉해야 할지 문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더십 부재…손 놓은 한국
지난달 7일 트럼프 당선인이 윤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한국 조선업의 협조를 요청한 내용은 대서특필됐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비상계엄 사태 이후 분위기는 싸늘하게 식었다. 공공부문 워싱턴 대관조직들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단 튀지 말자’면서 최대한 몸을 사리고 있다.

무엇보다 트럼프 당선인과 통화하거나 만나 협상할 주체가 뚜렷하지 않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통령 직무대행으로 나설 수는 있지만, 대행 신분으로 적극적인 외교를 추진하긴 어렵다.
차기 정부가 제대로 전열을 정비해서 트럼프 측과 협상할 준비를 하려면 1년은 걸릴 것이라는 게 워싱턴 외교가의 전망이다.

헌법재판소가 탄핵 판결을 내리고, 차기 대통령이 뽑히는 시점은 빨라야 내년 봄 무렵이다. 장관급 인선, 국회 청문회 통과, 이후 관계기관 인사가 진행되는 흐름을 고려하면 대사관, 공공기관, 공기업 등의 주요 직위에는 내년 말에나 후임자가 결정될 가능성이 상당하다. 워싱턴의 한 재계 관계자는“현재 고위직에 있는 이들은 어차피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할 테니 트럼프 정부와 관계를 수립하려 애쓸 필요가 있겠느냐”고 했다.

기업들은 나름대로 트럼프 정부와 연결되는 인맥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관세·규제 등 정책 대응은 결국 정부가 나서야 하는 분야다. 워싱턴의 한 대관업무 담당자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폐지나 축소와 같은 사안에 대응하려면 한국 전기차와 배터리 기업들이 한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각 기업마다 이해관계가 달라서 공동으로 로비회사를 쓴다든지 하기는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럴 때는 정부나 공공기관, 협회 등이 나서야 할 텐데 수장이 곧 바뀌는 상황에서 누가 열심히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한국은 이미 100조원 가량의 대미투자를 약속하고 이 중 상당부분을 실제로 집행하고 있지만, 트럼프 당선인 관점에서는 바이든 정부에 대한 투자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렇다고 국내 기업들이 손 회장처럼 대규모 투자를 턱턱 약속할 여건도 아니다. 이미 투자여력을 끌어모아 대미 투자를 진행 중이고, 전기차나 배터리 분야는 당초 예상보다 수요가 줄어들 것을 고려해야 한다.

기업들은 나름대로 그간의 투자를 ‘트럼프 정부의 공’으로 돌릴 방법을 고심하고 있다. 현대차는 조지아주 서배나 공장 가동을 취임식(1월20일) 이후에 진행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중이다. 한화그룹도 취임식 후에 필리조선소 인수 마무리 행사를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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