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도 배워간 세계 최초 기술"…'4기 암 환자'에 희소식

입력 2024-12-20 17:37   수정 2024-12-21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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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이나 내시경을 활용한 수술의 최종 목표는 구멍을 하나만 뚫는 ‘단일공’이다. 구멍을 여러 개 뚫는 수술보다 난도가 높지만 절개 범위를 최소화한다는 의미인 ‘최소침습’을 잘 구현할 수 있어서다.

김현구 고려대구로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사진)는 세계 처음으로 폐암 단일공 로봇 수술을 개발했다. 지난달엔 미국 하버드대 의대 교수가 김 교수에게 수술법을 배우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세계 1위 로봇수술기기 회사인 인튜이티브서지컬은 김 교수가 근무하는 고려대구로병원을 지난해 3월 세계 유일한 단일공 흉부 로봇수술 교육센터로 지정했다. 세계 최초 기술을 보유한 비결을 물었다. “대단한 일은 아니다”며 여러 차례 손사래 치던 그는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그는 “면역항암제와 로봇수술이라는 좋은 무기가 결합하면서 ‘수술 못하는 폐암 병기’는 없어졌다”며 “희망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수술 고통 덜어주려 흉강경 도입
김 교수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단일공 로봇 흉부수술을 집도한 흉부외과 의사다. 환자 고통을 줄이기 위해 구멍을 하나만 뚫는 흉강경·로봇수술법을 폐·식도암 수술 등에 도입했다.

폐암 수술은 가슴을 여는 개흉수술과 내시경·로봇팔을 넣어 하는 최소침습수술로 나뉜다. 개흉수술을 하기 위해선 가슴의 절반 정도를 절개해야 한다. 암을 떼어 내려면 수술하는 의사 손을 넣어야 하는데 갈비뼈가 가로막아 암 부위까지 접근하기 힘들 땐 뼈를 자르기도 한다. 암을 없애는 게 목표라면 이런 수술로도 충분하다. 김 교수도 과거엔 이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치료 경험이 쌓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환자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수술인데 암이 사라져도 큰 상처가 남거나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가 많았어요. 수술 후 폐 용적이 줄어 숨찬 증상 등으로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죠. 암 수술 후에도 계속 힘들어하는 환자를 보면서 ‘지금 하는 수술이 맞는 수술인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김 교수가 흉강경과 로봇 등 수술법 개발에 매진한 이유다.

그는 2006년께부터 내시경을 활용한 흉강경 수술을 폐암에 적용했다. 초기엔 가슴에 최대 5㎝ 구멍을 3~4개 뚫고 수술 기구를 넣는 게 기본이었다. 환자 고통을 덜기 위해 구멍을 하나씩 줄이다 보니 2012년 구멍을 한 개만 뚫고 수술하는 싱글포트까지 도달했다. 국내 처음, 세계 두 번째 성공이었다.
○‘면역항암제+로봇수술’ 생존율↑
도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16년 로봇수술을 도입한 뒤에는 수술 구멍을 줄이는 데 집중했다. 폐암 로봇 수술도 초기 흉강경처럼 구멍을 3~4개 뚫는 게 기본이던 때다. 구멍을 2개까지 줄이는 데 2년가량 걸렸다.

이후 목표는 구멍을 하나 뚫는 ‘단일공 흉부 로봇수술’이 됐다. 걸림돌은 2㎝ 정도로 좁은 갈비뼈 간 간격이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갈비뼈 아래 상복부에 구멍을 뚫고 접근하는 수술법을 개발했다. 폐암 환자에게 단일공 흉부 로봇수술을 무사히 시행한 결과를 모아 2018년 미국흉부외과학회지에 보고했다. 지난해엔 식도암으로도 수술 범위를 확대했다. 모두 세계 첫 사례다. 김 교수는 “흉강경은 ‘젓가락 수술’이란 별칭처럼 기구가 일자라 세밀한 움직임엔 제약이 있다”며 “로봇은 팔이 자유자재로 움직여 정교하게 수술할 수 있다”고 했다.

면역항암제가 폭넓게 쓰이면서 로봇수술의 역할은 더 확대되고 있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과거 폐암 수술을 하려면 크기가 작고 폐에만 암이 있어야 했다. 최근엔 암이 다른 장기까지 번진 4기 암 환자도 면역항암제로 암 크기를 줄인 뒤 수술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면역항암제는 몸속 면역체계가 암을 공격하도록 돕는다. 암을 죽이면서 주변에 염증 반응이 많이 일어난다. 면역항암 치료를 거친 환자의 암 수술은 상대적으로 난도가 높다. 김 교수는 “염증이 많고 수술 난도가 높은 환자에겐 정교한 수술이 필요한데 이때 로봇이 크게 도움이 된다”고 했다.

면역항암제와 단일공 로봇수술이 만나 3·4기 암 환자 생존율을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고난도 환자에게 싱글포트 흉강경 수술 대신 단일공 로봇수술을 하면 중간에 개흉수술로 전환하는 비율이 평균 10% 정도 낮아진다. 실패 없이 최소침습 수술을 마무리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진단 정확도 높이는 조영제도 개발
폐는 오른쪽에 세 개, 왼쪽에 두 개 등 다섯 개의 엽으로 구성된다. 크기가 작아도 암이 있으면 하나의 엽을 모두 도려내는 게 일반적이다. 암이 어디까지 퍼졌는지 명확히 파악할 수 없어서다. 암 부위를 정확히 진단·수술하면 정상 조직은 남기고 암만 도려낼 수 있다. 수술 부위가 작아지면 호흡곤란 합병증 등을 줄일 수 있다. 김 교수가 하버드대팀과 손잡고 암과 정상 조직을 형광물질로 구분해주는 조영제 개발에 나선 이유다.

인튜이티브서지컬과 컴퓨터단층촬영(CT) 이미지를 수술 부위에 내비게이션처럼 보여주는 인공지능(AI) 시스템도 개발하고 있다. 최종 목표는 스스로 수술하는 로봇을 만드는 것이다. 그는 “자율주행자동차처럼 간단한 수술을 해주는 1단계 자율수술로봇 시스템은 5년 안에 나올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수술 후 통증이 없어 신기하다는 환자를 보는 게 큰 보람이에요. 개흉수술만 하던 과거엔 대다수 환자가 극심한 통증을 호소한 것과 대조적이죠. 암 진단을 받았다면 꼭 치료해야 합니다.”

■ 약력

1996년
고려대 의대 졸업

2007년~
고려대구로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

2015년~
고려대구로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과장
대한민국의학한림원정회원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 학회 이사 및 학술위원장
대한폐암학회 평의원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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