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 심리적 방어선이던 1430원과 1450원선이 보름 만에 잇따라 뚫리면서 이제는 상단을 1500원선까지 열어놔야 한다는 전망이 증권가에서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20일 서울외국환중개에 따르면 전날 원·달러 환율은 직전일보다 16원40전 오른 1451원90전으로 주간 거래(오후 3시30분)를 마감했다.
환율이 2차 심리적 저항선인 1450원을 넘긴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였던 2009년 3월 이후 처음이다.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7원50전 오른 1453원으로 출발해 종일 1450원 안팎에서 등락했다.
환율은 비상계엄 사태 직후인 지난 4일 새벽 야간거래에서 일시적으로 1440원을 넘었다가 최근엔 1차 심리적 저항선이었던 1430원대에서 움직였다. 변동성이 커지면서 시장 참가자들을 불안하게 했지만 2022년 10월25일 레고사태 때 기록한 고점(1444원20전)을 넘지는 않았다.
그러다 전날 미국 중앙은행(Fed)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하기로 결정한 뒤 '매파적(통화긴축 선호) 금리인하'라는 해석이 나오면서 강달러를 부추겼다.
미 Fed의 금리 인하는 시장 전망에 부합했으나 만장일치가 아니었고 최근 견조한 경제 상황, 다소 주춤한 디스인플레이션 추세 등을 반영해 내년 정책금리 전망을 시장 예상(3회 인하)보다 축소(2회 인하)한 점 등을 시장에선 매파적으로 받아들였다.
제롬 파월 미 Fed 의장은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은)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앞으로는 분명히 (금리 인하) 속도가 느려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전날보다 0.04% 오른 108.17을 기록하고 있다. 이 지수도 2022년 11월10일(110.99) 이후 2년1개월 만에 최고 수준이다.
달러화 강세가 지속되면서 원·달러 환율이 1500원까지 상단을 높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민경원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원·달러 환율 1500원 도달 가능성을 열어 두고 대응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며 "달러를 견제해 줄 수 있는 대내외 요인이 현재 당국의 개입 말고는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 수준에 도달한 건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등 두 번뿐이다.
박형중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의 관세 인상 공약이 실현되면 내년 1월에라도 환율이 1500원을 넘어설 것"이라며 "한국의 정치 불안이 종료될 때까지 이례적인 고환율이 지속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내부적으로는 정치 불확실성이 환율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이다. 노무라증권은 한국의 정치적 불확실성 확대로 내년 5월 원·달러 환율이 1500원까지 상승할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며 달러 '롱(매수)', 원화 '숏(매도)' 전략을 권했다.
최제민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2022년 미국의 기준금리 급등으로 달러 인덱스가 110을 넘었을 때도 환율은 1430∼1440원 수준이었다"며 "현재 달러 인덱스가 108 수준인데 환율이 1450원을 넘어선 것은 최근 환율 급등에 국내 요인이 더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고 진단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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