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해상풍력발전을 위해 해양 영토를 ‘폭탄세일’하는 나라로 부각돼 우리 바다를 선점하려는 해외 자본이 앞다퉈 밀려들고 있다. 우리 영해의 20%가 해상풍력 사업 후보지에 포함되는 등 난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올 9월 말 현재 우리나라 앞바다에 설치된 풍향계측기는 총 74기다. 전남 신안 앞바다에만 풍향계측기 20기가 꽂혀 있다. 풍향계측기는 해상풍력 추진 사업자가 해당 해역이 풍력발전에 적합한지 측정하기 위해 공유수면(해수면) 사용 허가를 받아 설치하는 장비다.
기당 1억~2억원(설치 비용 포함 시 15억~20억원)인 풍향계측기를 꽂고 발전사업 허가를 받으면 축구장 1만1200개, 경기도 의정부시 면적인 최대 80㎢의 바다를 30년간 소유할 수 있다. 74기의 풍향계측기를 설치한 사업자가 최대 5920㎢의 바다를 소유할 수 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이미 발전사업 허가를 받은 해상풍력 프로젝트는 8월 말 기준 88개다. 작년 신규 사업장 평균 면적(35.2㎢)을 반영하면 총면적은 3098㎢다. 풍향계측기를 꽂고 발전사업 허가를 기다리는 후보군까지 합치면 총 162개, 9000㎢ 이상의 바다가 해상풍력 사업지로 할당됐거나 할당될 예정인 셈이다. 우리나라 해양 영토(4만2864㎢·한국해양과학기술원 기준)의 20%가 넘는 면적이다.
발전사업 허가를 받은 사업자 88곳 중 해외 업체는 48곳으로 55%에 달한다. 설비용량 기준으로는 총 29.1GW 중 66%에 해당하는 19.4GW가 외국 기업 소유다. 해상풍력 선진국인 북유럽 기업과 북미 투자회사가 많지만 실체가 불분명한 기업 뒤에 숨은 중국 비중이 점점 커진다는 게 정부와 해상풍력업계의 공통된 진단이다. 개발할 바다가 남지 않다 보니 해외 자본끼리 기존 사업권에 프리미엄을 붙여 사고파는 투기 양상까지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자본이 앞다퉈 한반도 앞바다에 몰려드는 것은 우리나라가 풍력발전을 서둘러 보급한다는 명분으로 해양 영토를 선착순으로 나눠주고 있어서다. 정부는 2030년까지 해상풍력발전 설비용량을 현재(0.125GW)의 100배가 넘는 14.3GW로 늘릴 계획이다.
정부 관계자는 “국내 민간 기업과 해외 자본이 느슨한 법망을 비집고 들어와 ‘알박기’에 나서면서 우리 바다의 체계적인 관리에 구멍이 뚫리고 있다”며 “바다 난개발을 막는 법체계 정비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해상풍력지역, 영해의 20% 넘어…바다 난개발에 무관심하다…
22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해수부에 따르면 중국 WTIV는 이미 지난 6~7월부터 전남 목포 앞바다에서 약 두 달간 묘박(선박이 해상에서 조금씩 움직이면서 대기하는 것)을 하며 우리 정부에 입항 허가를 사실상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WTIV를 띄우는 데는 하루 3억~5억원이 든다. 중국 WTIV는 두 달여 동안 묘박하며 180억~300억원을 썼다는 계산이 나온다.
중국 WTIV가 수백억원을 바다에 흘려보내고 한국법을 무시하면서까지 시장에 진입하려는 건 국내 해상풍력 시장이 ‘무주공산 노다지’기 때문이다. 올 8월 말까지 발전사업 허가를 받은 총 88개 해상풍력 사업 가운데 66%(19.41GW)가 해외 자본에 의해 운영된다. 해상풍력은 GW당 연간 7900억원가량의 전력·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 수익을 보장한다. 해외 자본이 1년 동안 벌어들이는 수익은 15조원, 30년인 사업 기간 얻을 수익은 450조원을 웃돌 전망이다.
정부는 1987년 택지개발법을 제정해 육지 난개발을 철저히 막아왔다. 반면 바다 난개발에는 무심했다. 어장과 군사지역을 제외하면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힐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해상풍력 발전이란 새로운 시장이 열리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해상풍력은 관리 주체가 제각각이다. 풍향계측기를 설치할 수 있는 점사용 허가의 경우 영해(12해리 이내)는 기초지방자치단체가, 배타적경제수역(EEZ)은 해수부가 내준다. 여기에 풍력발전 사업 허가는 산업부 관할이다.
한국은 2012년 탐라해상풍력발전단지를 착공하면서 첫 상업용 해상풍력을 시작했지만 해수부는 2021년에야 기초지자체의 점사용 허가 전수조사를 했다. 발전사업 허가를 내주는 산업부 전기위원회는 해상풍력발전 사업자의 국적과 지분 구성을 공개하지 않는다. ‘사업자가 희망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관리 주체가 제각각이다 보니 법망도 사각지대투성이다. 풍향계측기를 설치하기 위해 해수부의 점사용 허가를 받을 때는 의무적으로 군과 어민의 의견을 반영한다. 반면 산업부 전기위의 발전사업 허가권 심사는 재무 분석과 기술 분석 위주로 이뤄진다.
발전사업 허가권을 받으면 해수면 사용권이 최대 80㎢로 넓어지기 때문에 군 작전지역이나 어업권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점사용 허가 때는 문제가 없었는데 발전사업 허가를 내주는 과정에서 군, 어민과 갈등이 반복해 빚어지는 이유다. 국내산 멸치의 80%를 생산하는 경남 통영 지역이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은 해상풍력 시장에 대한 정부의 방침 부재를 가장 큰 문제로 꼽는다. 한국은 2036년까지 해상풍력 설비용량을 원전 27기 분량인 26.7GW로 늘릴 계획이다. 하지만 해상풍력 증가 수치 목표만 정했을 뿐 시장을 외국과 국내 민간 기업, 발전 공기업에 어느 정도씩 분배할지 명확한 방침이 없다는 것이다.
바다를 어떻게 관리할지 체계를 세우기도 전에 해상풍력 목표만 채우려다 보니 중국 해상풍력 설치 선박이 우리 영해를 무단 침입하고, 해외 자본이 우리 앞바다에서 땅따먹기하는 바다 난개발이 극성을 부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상풍력 업계 관계자는 “2024년 벌어지는 일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없는 후세의 권리를 현재 세대가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고 나눠주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영효/이슬기/황정환 기자 hugh@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