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그룹이 계열사 DB메탈의 처분 방안을 골몰하고 있다. DB메탈은 국내 1위 합금철 회사로 수년 전만 해도 1000억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가져다준 회사다. 그러나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실적이 급속도로 악화해 현재는 자본잠식 상태에 놓여 있다. 그룹 내 부동산 개발회사와 합병시키겠다는 방안을 내놨지만, 이마저도 금융감독원에 일단 제동이 걸린 상태다.
2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금감원은 골프장 운영사 DB월드가 지난달 24일 제출한 DB메탈 합병 증권신고서에 전날 정정을 요구했다. 금감원은 “투자자의 합리적인 투자판단을 저해하거나 투자자에게 중대한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했다.
DB월드는 지난달 24일 이사회를 열고 DB메탈 흡수합병을 결의했다. DB월드와 DB메탈의 합병 비율은 1대 0.03624다. 합병가액은 각각 1만1341원, 411원이다. 금감원이 제동을 걸면서 합병을 계속 추진하기 위해선 3개월 내 정정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DB메탈은 국내 1위 합금철 회사다. 연간 50만톤에 달하는 생산 규모를 갖췄다. 한때 연간 1000억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거뒀지만, 중국 저가공세로 최근 경영난을 겪고 있다. 작년 영업손실 126억원, 순손실 767억원을 기록했다. 특히 매출은 2022년 6709억원에서 작년 매출 2003억원으로 3분의 1토막이 났다. 작년 말 자본잠식률은 79.3%에 달했다.
DB메탈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강원 동해시에 있는 합금철 공장 가동률은 19.57%에 그쳤다. 2021년 말 가동률 73.81%에 비해 급감했다. 업계에 따르면 DB메탈은 현재 15개 생산라인 가운데 두 개의 라인만 가동하고 있다. 최근 3년간 직원 약 300명 가운데 160명 이상을 내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DB그룹은 DB메탈의 자산이라도 적극 활용하기 위해 골프장 운영사 DB월드와 합병하는 카드를 꺼냈다. DB월드는 골프장 레인보우힐스CC를 운영하는 회사다. 부동산 자산관리(임대, 운영, 매매), 컨설팅 사업도 하고 있다. DB메탈의 100% 자회사 DB월드건설도 부동산 개발 사업을 하고 있다.
DB그룹은 합병 후 DB메탈의 생산시설이 위치한 동해시 부지 개발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강원도 동해공장 인근에 약 10만 평 규모의 유휴부지를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합금철 사업도 이어나가 업황 회복에 대응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DB하이텍의 소액주주들은 이번 합병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DB메탈의 자본잠식을 해소하는 데 DB하이텍의 자금이 동원됐다는 주장이다. 앞서 DB하이텍은 작년 주주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DB월드에 890억원을 투자했는데, 이것이 두 회사의 합병으로 ‘DB메탈 살리기’에 동원됐다는 것이다. 현재 DB하이텍은 DB월드 지분 81.76%, DB메탈 지분 28.83%를 보유하고 있다.
DB메탈의 차입금에 김준기 전 DB그룹 회장의 지급보증이 얽혀 있다는 의혹도 있다. 이용우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023년 열린 국회 국정감사에서 김준기 전 DB그룹 회장이 DB메탈의 차입금에 대해 1512억원의 지급보증을 섰다고 주장했다.
DB그룹이 DB메탈의 합병 방안을 꺼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DB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는 정보기술(IT) 기업 DB아이앤씨가 DB메탈을 흡수합병하는 방안을 내놨지만, 행동주의 펀드 KCGI와 소액주주 반발로 철회했다. DB아이엔씨가 자산을 늘려 공정거래법상 지주사 전환을 회피하려 한다는 의혹도 제기됐었다.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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