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공하던 공대생, 공학자 대신 스탠드업 코미디언을 꿈꾸다

입력 2017-05-12 11:03  


[꼴Q열전] 





△ "외국 유명 스탠드업 코미디언은 정장을 입고 무대에 선다"며 정장을 차려 입은 박철현 씨(사진=서범세 기자)

[캠퍼스 잡앤조이=박해나 기자] 친구들이 학과 과제 하느라 머리를 싸맬 때, 개그 동아리에서 아이디어 내며 머리를 쥐어 뜯은 남자. 동기들이 시험공부하며 도서관을 지킬 때, 돌잔치 MC를 보기 위해 전국을 누빈 남자. 전공 공부보다 코미디가 더 좋다는 이상한 공대생의 이야기. 

유니스트(울산과학기술원)에서 학교생활 좀 열심히 했다 싶은 사람 중에 박철현(유니스트 디자인 및 인간공학부 4) 씨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학과 수업보다 학교 행사 MC를 보느라 더 바쁜 남자다. 동아리 행사, 학교 축제, 체육대회 등 40여개 학교 행사를 도맡아 진행하며 이제는 학교의 유명인사가 다 되었다. 

“유재석 씨가 고등학교 때부터 학교 축제 등 각종 행사의 MC를 맡으며 역량을 키웠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나도 학교 MC로 활동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개인 SNS에 ‘각종 행사가 있다면 MC로 써 달라’는 글을 올렸고, 아카펠라 동아리의 작은 행사 MC로 처음 활동을 시작했어요. 그 후 입소문이 나며 다른 교내 행사에도 자주 나서게 됐고, 이제는 연예인이 오는 학교의 축제 진행까지 맡을 정도가 됐죠.” 



△ 학교 행사 MC를 보고 있는 모습 (사진 제공=박철현)


말주변 없던 공대생, 스탠드업 코미디에 빠지다  

박철현 씨는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말주변 없던 평범한 소년이었다. 검사, 변호사가 되라는 부모님의 응원에도 ‘나는 말을 못해서 안 된다’며 손사래를 쳤을 정도다.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못했다. 몇몇 친구들끼리 모여 있을 때는 개그를 담당하는 역할을 하긴 했지만 멍석을 깔아주면 입을 떼기가 어려워 쭈뼛댈 뿐이었다. 그저 열심히 공부해 세상에 이로운 무언가를 발명하는 공학자가 되기만을 바랐다.  

그런 생각이 바뀐 것은 대학 생활을 시작하면서 부터다. 학창시절 공부 좀 한다고 자부했건만 대학에 오니 날고 기는 실력자들이 넘쳐났다. 전공 공부도 생각만큼 재미있지 않았고, 자연히 성적도 좋지 않았다. 자신감은 조금씩 줄어들었고 ‘내가 평생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공학자가 되면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쌓을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그는 1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결정한 뒤 자신의 꿈을 찾기로 했다. 

“휴학 후 아르바이트도 하고 책도 읽으면서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죠. 그 와중에 다니던 교회에서 콩트 연기를 해볼 기회를 갖게 됐어요.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연기라는 것을 해 봤는데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제 안에 있던 에너지가 밖으로 분출돼 나오는 느낌이었죠. 예상했던 부분에서 사람들의 웃음이 터지면 그렇게 짜릿할 수가 없었어요. 그 기억이 강하게 남아 학교로 돌아가면 ‘개그 동아리’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 "의도한 부분에서 웃음이 터질 때, 너무 짜릿해요" (사진=서범세 기자)


웃겨야 산다! ‘개드립’ 발표로 대기업 인턴 자리까지 득템 

복학 후 박 씨는 야심차게 교내 개그동아리를 만들었다. 10여명의 회원들이 모였고, 서로의 개그감을 뽐내며 공연을 기획하고 사람들 앞에서 선보이기도 했다. 박 씨는 주로 공연 시작 전 분위기를 띄우는 사전MC 역할을 맡았다. 사람들 앞에 서 말하는 것이 떨리긴 했지만 자신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박장대소하는 모습이 그렇게 흐뭇할 수 없었다. 자신의 길이 ‘MC’라는 것을 확신한 박 씨는 내공을 쌓기 위해 잠시 극단 생활도 해보고 프리랜서 MC로 각종 돌잔치, 결혼식 등의 행사를 찾아다녔다.

“MC로 활동하며 스탠드업 코미디에도 관심을 갖게 됐죠. MC는 정해진 콘텐츠가 있고 그것을 이어주는 역할인데, 스탠드업 코미디는 직접 쓴 대본으로 사람들 앞에 서는 1인극과 같은 것이더라고요. 제가 바라던 것이 바로 그거였어요. 그때부터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되겠다는 꿈을 갖게 됐죠.”

박 씨는 유튜브를 찾아보고 각종 공연을 직접 관람하면서 스탠드업 코미디에 대한 감각을 익혔다. 특히 어릴 적부터 만화영화 대신 예능을 즐겨 봤던 것이 은근히 큰 힘이 됐다. 예능 조기교육으로 몸에 체화돼있던 멘트, 센스 등이 재치 있는 애드리브로 승화돼 관객들을 웃겼다. 

“학과 발표를 할 때도 이런 부분이 많이 도움이 됐어요. 한 번은 LG전자 산학협력 수업을 듣던 중 본사에서 발표할 기회가 생겼거든요. 새로 개발할 제품을 기획해 발표하는 자리였는데 진지하게 발표를 이어가다가 쓰고 있던 페도라 모자에서 프로토 타입의 제품을 꺼내 선보였죠. 심사를 보던 분들이 ‘약 팔러 온 것이냐’고 하셨지만 다들 재미있어 하셨어요. 덕분에 교수님 추천으로 해당 기업의 인턴십 기회까지 얻었죠.” 



△ 학기 중 갑자기 미국 여행을 떠나 자유를 느끼고 있는 박철현 씨 (사진 제공=박철현) 

수업 땡땡이 치고 미국행, 코난 오브라이언 쇼 관람하고 F학점도 받고 

스탠드업 코미디라는 꿈을 찾은 뒤 박 씨는 매우 바빠졌다. 졸업장은 포기할 수 없어 학교 수업을 들으며 동시에 각종 행사의 MC로 뛰어다녔고, 동아리, 각종 문화기획 활동에도 빠짐없이 참석했다. 과제가 많기로 익히 알려진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있어 더욱 시간은 빠듯했다. 특히 유재석 뺨치는 진행 솜씨가 소문나며 여기저기 그를 찾는 곳이 점점 늘어났는데 그럴수록 박 씨의 고민은 깊어졌다. 

“학교 행사의 특징은 관객층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동아리 행사에서 만난 관객을 학교 축제 때도 만나고 체육대회 때도 만나죠. 일반 행사는 관객이 다르니 같은 컨텐츠를 반복해도 되는데, 학교 행사는 그럴 수가 없더라고요. 매번 다른 것을 준비해야하는데 너무 바쁘니 아이디어를 내기가 쉽지 않았죠. 관객과 함께 하는 게임도 준비하는데, 어느 순간 저보다 그 게임을 더 잘하는 관객을 보면서 당황하게 되더라고요.”

분명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쫓기듯 달리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박 씨는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는 돌연 3주간의 미국 여행을 떠나 버렸다. 이미 학기가 시작된 9월, 수강 중이던 3개 과목을 내팽개치고 말이다. 친구와 단 둘이 라스베가스부터 뉴욕까지 자동차로 달린 그는 LA에 가서 우상으로 여기던 미국의 유명 코미디언이자 진행자 코난 오브라이언의 쇼를 직접 관람했다. 생각만큼 재미있지 않아 조금 당황했지만 덕분에 큰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고. 스탠딩 코미디의 중심지인 뉴욕에 도착해서는 공연도 보고, 도시 곳곳의 낭만을 느끼며 영감을 받았다. 3주간의 도피 혹은 탈출은 지친 박 씨에게 다시 뛸 에너지를 선사했다. 비록 한국에서 그를 기다린 것은 교수님의 분노와 F학점이었지만. 

“여행 후 심기일전해 더 열심히 뛰기로 결심했어요. 처음으로 제 이름을 건 ‘일상의 작은 통찰-박철현의 스탠드업 코미디쇼’를 시작할 예정이죠. 매주 금요일 다른 주제로 관객들 앞에 설 거예요. 공연을 하면서 차근차근 콘텐츠를 만들어 가려고요. 언젠가는 저만의 코미디 브랜드를 만들면 좋겠어요. 힙합 레이블처럼 색깔이 뚜렷한 코미디 브랜드를 만드는 거죠.”  

phn09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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