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은 KB증권 사장 “직장생활 4년차까지 구조조정 1순위였죠”

입력 2017-05-18 09:54  


윤경은 KB증권 사장 인터뷰...대학생이 뽑은 ‘닮고 싶은 ceo’ 증권 부문 1위

[캠퍼스 잡앤조이=박해나 기자]<</span>퍼스 잡앤조이>는 창간 7주년을 맞아 대학생 1000명을 대상으로 ‘닮고 싶은 CEO’를 조사했다.그중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이 증권 부문 1위를 차지한 윤경은 사장이다. 지난 5월 15일, 올 초 새롭게 출범한 KB증권을 이끌고 있는 윤 사장을 여의도 본사에서 만났다.



사진=이승재 기자 

윤경은(55) KB증권 사장은 증권 업계 해외 영업 전문가로 손꼽힌다. 딜러라는 용어 자체도 낯설던 1987년 제럴드 한국지사에서 선물딜러로 직장생활을 시작해 BNP파리바은행, LG선물 등에서 근무했다. 2001년에는 굿모닝신한증권(현 신한금융투자)으로 자리를 옮겨 부사장까지 올랐고, 솔로몬투자증권과 현대증권 대표 등을 역임했다. 올 초 현대증권과 KB투자증권이 ‘KB증권’으로 통합하며 전병조 사장과 각각 대표를 맡고 있다. 




대학생이 뽑은 ‘닮고 싶은 CEO’로 선정된 소감은. 

“기분이 좋으면서도 약간 멋쩍다. 현대증권과 KB투자증권이 통합돼 KB증권으로 출범한 것이 지난 1월 1일이다. 길지 않은 시간인데, 대학생들의 긍정적 평가를 받으니 기분이 좋다.” 

현대증권과 KB투자증권의 합병은 어떤 의미가 있나.

“증권시장에서 자본력을 키우고 대형화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트렌드가 됐다. 이를 위해 현재 58개나 되는 증권사가 서로 인수 합병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현대증권과 KB투자증권의 합병은 높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조합이었다고 생각한다. 현대증권은 50년 전통의 대형 증권사인데 그룹 이슈, 매각 이슈 등으로 안정적 경영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KB투자증권은 국내 대표 금융사인 KB금융그룹의 증권사임에도 규모가 너무 작고 브랜드 인지도가 낮았다. 두 회사가 만나면서 현대증권은 대주주의 신용도와 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게 됐고, KB투자증권은 시장에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규모를 갖추게 됐다. 사실 증권사 합병의 역사를 보면 ‘1+1=1.5’라는 좋지 않은 결과가 많았다. 때문에 기대 반, 우려 반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1분기가 지나고 보니 우려했던 부분이 갖춰지고 서로 간의 장점만 부각돼 좋은 실적이 나왔다. 1단계는 성공적으로 안착했다고 생각한다. 다음 단계는 바로 오늘 기존 두 회사의 전산이 통합되는 날이다. 주말과 연휴까지 반납하고 직원들이 열심히 일한 덕분에 전산 합병이 아무런 문제없이 원만하게 마무리됐다.”   

1분기 실적 호조의 요인은 무엇인가.

“KB증권과 합병 전 현대증권의 대표로 재직했다. 현대증권은 과거 국내의 대표 증권사였다. 근무하던 직원들의 자부심, 로열티, 의지 등이 매우 높았다. 그런데 현대증권이 그룹, 매각 이슈로 불안한 상황이 지속돼 직원들이 악조건 속에서 고군분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을 겪다가 KB증권으로 통합되며 회사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지고 환경이 좋아지니 직원들이 신바람이 난 것 같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다 보니 생각보다 빨리 긍정적 성과가 나타난 것 같다. 기존 증권사들이 합병 후 1년가량 고전하는 것에 비하면 상당히 성공적이지 않나 생각한다. 또 대주주의 역할도 상당 부분 영향을 미쳤다. 보통 은행 그룹은 보수적이고 증권사는 자유로운 조직이라 융화가 어렵다. 하지만 KB금융그룹의 윤종규 회장은 자본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이 진취적이고 창조적이다. 덕분에 취임 후 KB금융그룹이 급진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부분이 문화적인 면에서 큰 힘이 됐다.”  



△ 사진=이승재 기자

인터넷 은행, 로보어드바이저 등 금융권에도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 금융업의 미래를 어떻게 예상하나. 

“2000년 초 처음 온라인 증권사가 등장했으나 당시 업계에서는 생존 기간을 5년 미만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곧 모든 대형 증권사가 그 비즈니스 모델을 따라가게 됐다. 현재 80% 이상이 온라인으로 거래될 정도다. 앞으로 금융업에서는 오프라인보다 온라인 은행으로 가려는 변화가 급격하게 생길 것이라 예측한다. 또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영역에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 대부분의 노동은 기계가 대신할 수 있지만 엔터테이너, 자산 관리(웰스 매니지먼트)는 기계가 대신할 수 없다. 앞으로도 컨설팅, 자산 관리 등 인간이 서비스할 수 있는 부분이 발전할 것이다. 투자 은행, 고객 자산 서비스, 세무 상담 서비스, 노후 설계 등 직접 컨설팅하는 부문의 부가가치가 높은 평가를 받을 것이다.”   

증권사의 역할과 기능도 달라질까.

“많은 사람들이 안정적인 자산 관리는 은행, 투자는 증권사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에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현재 자산을 관리하는 주요 고객층은 50대인데, 이들은 투자성과 안정성 2가지를 모두 충족하는 상품을 원한다. 하지만 기존의 은행 상품은 금리가 너무 낮아 만족도가 떨어져 증권사로 눈을 돌리게 된다. 은행의 한계를 커버할 수 있는 증권사의 기능이 확대될 것이라 생각한다.”  

흔히 해외 영업은 해외파, 유학파의 독무대로 불리는데 ‘순수 토종’의 이력으로 성공했다.

“많은 사람이 해외 영업을 하려면 외국어를 완벽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학 능력과 영업 능력은 별개라고 생각한다. 일정 수준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할 정도면 충분하다. 애플사가 국내에서 성공적 비즈니스를 해낸 것이 그들이 한국어를 잘해서는 아니지 않나. 아이디어가 더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는 해외 비즈니스를 유학생 인력 안에서만 충당하려고 하니 발전이 더디다.” 

자신만의 성공 비결이 있나. 

“당시 함께 근무하던 선배들은 모두 해외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회사의 리서치 자료를 번역해 전달하고 브리핑하는 아나운서 역할을 했다. 그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다른 경쟁력이 필요했다. 나는 사무실에서 얻을 수 있는 정형화된 정보 말고 실제 시장에서 떠도는 정보를 제공했다.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으로 나를 차별화한 것이다.”  



△ 사진=이승재 기자

영문학 전공(한국외국어대 영어과 졸업)이라 금융 지식이 전무했을 텐데, 회사 적응이 힘들지는 않았나. 

“직장생활 3~4년 차까지 늘 구조조정 대상 1순위였다.(웃음) 당시 회사에 MBA 출신이 많았는데 그들이 늘 스카우트되며 인력이 부족해진 덕분에 운 좋게 계속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회사생활은 고전의 연속이었다. 경제 관련 지식도 거의 없던 상태라 매일매일 독학을 하며 부족한 부분을 채웠다. 출퇴근할 때 일부러 비싼 좌석버스를 타고 다니며 경제 서적을 읽었다. 회사에서도 몰래 책상 밑으로 책을 보다 들켜 야단맞기 일쑤였다. 새벽 6시까지 회사에 남아 있던 적도 있다. 파생상품 가치평가에는 수학적 지식이 필수다. 수학과 나온 여자 선배들에게 질문하고 또 질문했다.” 

금융인의 길을 선택한 계기는. 

“고등학교 때 막연히 해외에 나가서 일하는 것을 동경했다. 당시는 해외여행 자유화도 되지 않았을 때고 유학은 최상위 계층의 특권이었다. 평범한 학생이던 내게 해외에서 일하는 것은 굉장히 멋있어 보였다. 그런 뜻이 있어 대학 전공도 영문학으로 정한 것이다. 외국계 금융권에 입사한 것은 우연이었다. 먼저 취업한 후배가 어느 날 ‘파생 관련 일을 해보지 않겠느냐’며 제안했다. ‘파생이 파충류와 비슷한 것인가’ 생각할 정도로 아무것도 모르던 때였다. 남들이 하지 않는 새로운 분야고 외국계 회사라는 것에 끌려 지원서를 냈는데, 이것이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 인터뷰 중 윤경은 사장이 꺼내 보여준 1998년 '한국경제신문' 인터뷰


직업으로서 금융업의 매력은 무엇인가.

“금융업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다. 조직에서 개인의 능력과 성과에 대해 정당하게 보상받는 유일한 업종이라 생각한다. 전자회사, 종합상사에서 열심히 일해 성과를 낸다 해도 개인에 대한 평가가 크게 차별화되지는 않는다. 직원들에게도 ‘이만큼 좋은 사업, 좋은 환경이 어디 있느냐’고 말한다.” 

미래의 금융인을 꿈꾸는 대학생에게 조언한다면.

“무조건 자격증 취득과 지식 쌓기에만 몰두하지 않으면 좋겠다. 요즘 대학생은 지식적으로는 부족함이 없다. 물론 본인이 잘할 수 있는 특정 부분에서의 지식과 전문성은 필요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전문 분야에서 자리를 잡으면 그때부터는 현명하게 판단하고 창의적인 생각을 갖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평소 다양한 시사 이슈에 관심을 갖고 경제 흐름 등을 공부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넓은 식견을 갖추길 바란다. 지금부터 차근차근 쌓다 보면 그것이 간접경험이 되어 중요한 판단을 내려야 할 때 유연하게 사고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다.”   

대담 장승규 편집장 

정리 박해나 기자 phn09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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