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중국 국가주석으로 선출된 시진핑(習近平)은 유효투표 2,956표 가운데 찬성 2,952표, 반대 1표, 기권 3표를 받아 득표율이 무려 99.86%에 달했다.
지난 1993년부터 지금까지 치러진 국가주석·부주석·전인대 상무위원장 등 국가지도자 선출투표 가운데 시진핑의 득표율이 가장 높았다.
그렇지만 1장의 반대표가 눈길을 끌었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을 하루 앞둔 1949년 9월30일 치러진 국가주석 선출 투표에서 마오쩌둥(毛澤東) 역시 1장의 반대표를 받았다.
당시 일부에선 마오쩌둥 주석이 '겸손한 태도'를 보여 스스로 자신에게 반대표를 던졌을 거란 추측도 있었지만, 이후 반대표를 던진 건 마오 주석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1993년 장쩌민(江澤民)이 국가주석에 선출될 때는 반대 35표와 기권 25표가 있었고 2003년 후진타오(胡錦濤)가 국가주석에 선출될 당시에는 반대 4표와 기권 3표가 나왔다.
중국 인민대 장밍(張鳴) 교수는 시진핑 주석의 득표율이 높았던 것과 관련해 "마오쩌둥 주석 선출 당시에는 (투표자 가운데) 관료의 비율이 지금처럼 높지 않아 민의를 더 잘 반영할 수있었다"면서 "이번 투표결과는 단지 시진핑 주석이 관료들 가운데 인기가 높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고 마오쩌둥의 권위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말했다.
중국 역사학자 장리판(章立凡)은 "전인대 대표는 모두 엄격한 선별을 거쳐 오로지 '관(官)의 뜻'을 대변한다"면서 "반대표가 적었던 것은 후진타오 집권 10년간 약해진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 강력한 지도자를 갈망하는 관(官)의 입장이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날 전인대 상무위원장에 선출된 장더장(張德江)은 9장의 반대·기권표가 나왔고 후진타오 전 주석의 복심으로 알려진 리위안차오(李源潮) 전 공산당 조직부장은 이날 부주석 선출 투표에서 80장의 반대표를 받았다.
한편 14일 전인대 부위원장 선출결과와 관련해 홍콩 명보는 후진타오 전 주석이 좌장인 공산주의 청년단(공청단)파의 영향력이 건재함을 확인했다고 분석했다.
신문은 전인대 부위원장에 선출된 선야오야오(沈躍躍), 지빙쉔(吉炳軒)은 후진타오 주석 계열인 공청단파 소속이며 장핑(張平) 신임 부위원장도 후 전 주석의 심복으로 알려져있다.
13명 전인대 부위원장 가운데 공천단파는 3명을 배출해 소수정파 몫 5석, 소수민족 몫 2석을 제외한 나머지 6석 중 절반을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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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CBS 성기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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