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의 성자- 중림동의 추억

입력 2011-07-14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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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중림동 441번지 일대. 행정 구역상으론 어엿한 도심이지만 택시 기사들도 왕왕 어디냐고 묻는 사각 지역입니다. 한길 건너편에 종로학원, 오른 쪽으로 한국 최초의 고딕식 건축물이 있는 약현성당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성당 앞쪽엔 구두 가게 10여 개가 옹기종기 모여 전통의 수제화 거리 명맥을 유지하고 있고요. 바로 옆 염천교 위에 서면 서울역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새벽장이 열려 포구의 비린내가 하루 종일 가시지 않는 이 동네에서 20년 넘게 직장 생활을 했습니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생선, 육류, 채소 가게와 순대, 설렁탕, 감자탕 집… 그 앞에 한 뼘 좌판을 연 여인네들의 주름살과 함께 세월이 흘렀습니다. 소주병을 허리에 낀 채 쓰러져 잠든 노숙자 얼굴의 상처에 피딱지가 앉고 다시 새 살이 돋으면 계절이 바뀌곤 했지요. 정들었던 그 거리를 생각하면서 쓴 시 한 편 올립니다.


중림동 옛 합동시장 터
도로변에서 야채 파는 할머니
소나무 껍질 같은 손으로
대파, 실파, 상추, 깐 마늘, 풋고추
곱게 다듬는다 손자 손녀 단장시키듯
굽은 어깨에서 미끄러진 여름 햇살이
안쓰러운지 속삭인다
예쁘게 한숨 주무세요
자리 펼 것도 없이
영정사진 들머리에서 끄덕끄덕 졸다가
정오의 성당 종소리에 화들짝
오메, 내 정신 좀 봐. 그거? 오백 원에 가져가
백 원 깎아줘요. 사백 원!
옛다! 못 이기는 척 거스름돈 건네는
우리들의 넉넉한 빈자 해거름 되자
거둔 좌판 십자가처럼 끌고 좁은 골목 오른다
쪽방 문턱 넘어 몸 눕히면 그대로 광야
내일의 복음이
독거 노인의 헛기침을 받아내고 있다

늦은 밤 날 선 바람 부는 서울역
광장으로 향하는 계단에 앉아
직각으로 고개 떨군 노숙자
지상 한 켠에 자신의 망명정부 세웠다
소주 한 병 오뎅국물 한 컵이면 오케이
과거를 묻지 마세요
수상한 관심도 노 탱큐
다만 도시의 부처란 부처는
모두 죽였다는 건 밝힐 수 있어요
사리가 나오든 말든
나무든 돌이든 가리지 않았지요
기적이 울리네요
소주라도 한 병 사면 더 들려줄 말 있어요
언제든 떠나고 어디서든 돌아오는
기차편이 있음을 하지만
동쪽으로 동쪽으로 가본들
결국은 제 자리로 돌아온다는 것을….
도무지 알쏭달쏭한 자유인은 퀭한 눈
그대로 동안거에 들었다

- 졸시「우리 곁의 성자」전문 (문학무크『시에티카』제3호, 2010)

글: 김홍조(한국경제TV 해설위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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