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의창 W] 은행 투자일임업 진출 '뜨거운 감자'

김민수 기자

입력 2013-09-25 18:08  

<앵커>
은행들이 고객으로부터 투자판단을 위임받아 돈을 굴려주는 투자일임업 진출을 추진하자, 증권업계가 강력 반발하면서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라고 있습니다.
은행들은 제대로 된 자산관리서비스를 하기 위해서 투자일임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당장 밥그릇을 빼앗길 처지에 놓인 증권사들은 날선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취재기자와 함께 좀 더 자세한 내용 알아보겠습니다. 증권팀 김민수 기자 나와있습니다.

김 기자, 먼저 투자일임업이 무엇이고 은행들이 왜 이걸 하겠다는 건지부터 알아보죠.

<기자>
시청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 투자일임업이 무엇인지부터 설명드리겠습니다.
투자일임업은 쉽게 고객이 맡긴 돈을 금융회사가 알아서 운용하는 업무를 말합니다.
고객이 이런저런 데 투자해달라고 하는게 아니라, 투자일임업이란 말 그대로 투자판단 자체를 금융회사 일임하는 겁니다.
현재 증권회사나 자산운용사들이 이 업무를 하고 있는데, 은행들한테는 허가가 나지 않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 투자일임업이 라이센스가 없는 은행들은 고객의 맡긴 돈으로 특정기업 주식을 사고 팔 때 일일히 서명을 받고 증명을 남겨야 합니다.
반대로 증권회사는 고객이 돈을 맡기면서 이 가운데는 절반은 주식, 나머지는 채권에 투자해달라고 하면 증권사가 알아서 돈을 굴릴수 있습니다.


<앵커>
그럼 구체적으로 들어가서 은행들한테 이 업무가 꼭 필요한 건가요? 은행들의 입장은 어떻습니까?

<기자>
한 예를 들어 설명드리겠습니다.
최근 몇년사이 이른바 자문형랩 상품이라는 게 인기를 모았습니다.
은행 PB센터를 통해서도 참 많이 팔렸는데요. 뭉칫돈들이 들어오긴 했지만 은행들은 그다지 재미를 보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수익의 절반 이상을 자문사들이 가져가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투자일임업 라이센스가 없기 때문에 이런 자문형랩 상품을 직접 만들수는 없고 증권사나 자문사에서 가져다 팔 수만 있는 겁니다.
은행들이 제대로 된 종합자산관리서비스를 하기 위해서 투자일임업 진출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유입니다.
또 은행들이 투자일임업 진출을 희망하는 이면에는 새로운 수익원 확보가 절실하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저금리 시대를 맞아 예대마진이 줄어들면서 은행들의 수익성은 사상 최악의 지경에 이른 상태입니다.
상대적으로 보수가 높고 자유로운 영업이 가능한 투자일임업 진출은 매력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앵커>
은행들 입장을 들어봤는데요. 그렇다면 국내 투자일임업 시장 규모가 어느 정도길래 은행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건가요?

<기자>
투자일임업 시장은 해마다 20% 넘는 고성장을 하고 있습니다.
시장규모가 지난 2011년 296조원에서 지난해 말에는 360조원으로 늘어났고, 올해 400조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장이 급성장하다보니 너도나도 사업에 뛰어들면서 수익성은 악화되고 있습니다.
현재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투자자문사 등 300여개 금융투자회사들이 투자일임업을 하고 있는데요.
경쟁이 치열해지다보니 지난 2011년 6191억원네 달했던 투자일임보수는 지난해 5056억원으로 줄었습니다.
시장은 20% 넘게 커지고 있지만, 업자들이 받는 수수료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겁니다.


<앵커>
시장 상황을 보니 증권사들의 반대하는 것도 공감이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극렬히 반대하는 데는 그 이유가 있을텐데요. 자세히 알아보죠.

<기자>
일단 증권사들이 투자일임업으로 버는 돈이 짭짤하다는 게 첫번째 이유일 겁니다.
먹을 것 가득한 밥그릇을 나누기는 싫다는 거죠.
지난해 국내 62개 증권사가 `랩어커운트`라는 일임형상품으로 벌어들인 수수료 수입이 2625억원입니다.
지난해 증권업계 전체가 낸 순이익이 1조2400억원 정도니까 20%를 넘는 겁니다.
매매수수료 수입이 줄면서 최악의 시기를 맞고 있는 증권업계 입장에서는 사활을 걸고 지킬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이밖에도 증권업계는 다양한 이유로 은행의 투자일임업 진출을 반대하고 있는데요.
영상을 통해 들어보시겠습니다.

<리포트>
자본시장통합법은 은행권으로 편중돼 발전한 국내 금융시장의 균형발전을 위해 지난 2007년 제정됐습니다.
은행권이 독점하다 시피한 금융 업무 중 일부를 금융투자업계도 겸영할 수 있도록 해 금융업권간의 균형발전을 유도하겠다는 의도입니다.
하지만 최근 은행권은 이와는 반대로 자신들에게 금융투자업계의 핵심업무 중 하나인 투자일임업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박사
"은행의 PB에서 일임업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건데..PB와 일임은 개념 자체가 다르다. PB는 고객들을 위해 자산배분을 해주는 일이고 투자일임이라는 것은 매니저가 자금을 운용하는 건데...펀드에서 볼수있듯이 운용과 판매가 엄격히 분리되는 제판 분리가 세계적 추세인데.."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은행권이 형평성 논리를 들고 나왔지만 형평성은 적게 가진 자들이 많은 것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요구해 평균을 맞추는 것이지, 이미 거의 모든 금융업무가 가능한 은행권이 들고 나올 논리는 아니라고 반박합니다.
실제로 국내증권사들의 총 자산규모는 은행의 1/8 수준에 불과하며 순이익은 1/12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더구나 은행들은 이미 투자일임업과 유사한 특정금전신탁업을 영위하고 있는데다 지주사내에 증권사나 자산운용사를 가지고 있어 이들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투자일임업을 할 수 있습니다.
굳이 내부겸영(in-house)을 할 필요가 없다는 얘깁니다.
<인터뷰>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박사
"해외에도 은행이 일임업을 겸영하는 곳은 없다. 미국이 일부 있긴한데.. 그곳은 투자은행이고..하지도 않고 성공한곳도 없다"
새로운 수익확보 차원이라는 논리도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투자일임시장은 시장 성장에도 불구하고 이미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여기에 투자자문사를 포함해 331개나 되는 일임업자가 참여하는 과당경쟁시장.
최근 3년간 일임자산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수수료 수입은 매년 큰폭으로 감소하고 있어, 은행권의 진출은 시장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얘깁니다.
일부에서는 불완전판매 등 투자자보호에도 문제가 생길 소지가 크다고 지적합니다.
투자상품에 대한 지식부족으로 인한 불완전 판매, 여기에 은행들의 계열사 펀드 집중 판매 등에서 엿볼 수 있는 부작용의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입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은행권이 수익성 확보와 경쟁력 제고를 고민하고 있다면 이미 과당경쟁으로 들어선 국내 일임시장을 엿보지 말고 당당히 해외로 나가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게 국내 금융시장발전을 위한 길이라고 말합니다.

<앵커>
사실 양측의 입장이 모두 이해가 가기는 하는데요. 결정권을 쥐고 있는 금융당국의 입장을 어떻습니까?

<기자>
아직 금융당국 정확한 입장이 정해진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최근 은행권 관계자들이 간담회를 통해 투자일임업 허용을 검토해달라고 요청하면서 이에 대해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재는 은행한테 투자일임업을 허용했을 경우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협의가 진행중인 상황이라고 합니다.
금융권에서는 금융당국이 은행의 투자일임업 진출을 허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은행들이 최악의 시기를 지나고 있고, 최근 금호나 STX 등 기업들의 대규모 부실을 떠안으면서 큰 손실을 봤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금융당국의 적지않은 압박이 있었고, 때문에 금융당국 입장에서는 은행들이 살 길도 만들어줘야 하는 입장에 놓인 겁니다.
또 최근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증권사들의 기업대출이 허용되는 등 은행과 증권 등 금융회사 간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있다는 점도 금융당국이 은행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앵커>
금융당국의 고민이 깊을 것 같습니다. 언뜻 보면 밥그릇 싸움 같아보이기도 합니다. 김 기자 생각은 어떻습니까?

<기자>
양측의 입장이 모두가 이해가 가는 상황이고 설득력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논리로 본다면 은행 쪽이 좀 더 설득력이 있기는 합니다.
은행들은 수익성의 목적도 있지만 제대로 된 서비스를 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증권업계는 밥그릇을 지키겠다는 뜻이 분명합니다.
과당경쟁이라고는 하지만, 은행까지 이 시장에 들어오면 수수료는 더욱 떨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고액자산가뿐만 아니라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산관리를 받을 수 있는 장점도 있습니다.

또 증권사나 자산운용업계에서는 은행의 불완전판매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는데요.
그동안 은행창구를 통해서 얼마나 많은 펀드와 보험상품이 팔렸습니까? 그 부분은 제대로 감독해야 할 부분이지 업무 자체를 막아야 할 사안이 아닌 것 같습니다.
또 이미 4대 금융지주의 경우, 은행과 증권사의 자산관리가 상당부분 교류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파급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있습니다.

김 기자,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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