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충현의 ‘펀드노트’] 28편. 펀드의 행복서열

입력 2013-10-16 09:30  

[조충현의 ‘펀드노트’] 28편. 펀드의 행복서열


최근 모 증권사가 투기 등급에 해당하는 계열회사를 담보로 발행한 CP (기업어음)들이 그룹 부도로 말미암아 투자자들에게 큰 손해를 입힌 일이 벌어졌다. 그 후폭풍이 어디까지 미칠지 모르겠지만 증권사를 믿고 돈을 맡긴 투자자들의 실망감으로 인해 고객예탁금이 줄고, 금융시장이 경색되면서 신용공황에 빠져 비우량 회사채 시장은 고사 직전에 이르렀다.


펀드시장도 걱정이다. 외국인의 참여로 증권시장이 빠른 회복세를 보이는 가운데 이때를 노려 차익실현 및 원금 회복 기회로 삼으려는 투자자들이 늘면서 지속적으로 펀드 환매물량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특히 그중에서도 국내 주식형펀드의 경우 펀드시장이 한창 활기가 넘치던 2009년 말 140조원을 상회하던 설정액이 최근 들어 약 63조원대로 쪼그라들었다.


이런 와중에 설상가상으로 대출을 미끼로 한 꺽기(구속성예금) 행위가 적발되고, 펀드 불완전 판매에 대한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며칠 전 소보원은 최근 2년 사이에 펀드를 구매한 소비자 500명에게 펀드 명칭을 통한 상품 이해도를 조사 발표했는데, 응답자의 9.6% 만이 자신이 가입한 펀드 이름을 정확히 알고 있다고 응답한 것을 보면 아직도 펀드 판매 현장에서는 완전판매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음이 짐작된다.


‘투자의 최종적인 책임은 투자자에 있다’ 이 말은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정보의 불평등성이나 투자자의 무지로 인해 자신이 투자하는 펀드 상품의 명칭에 대한 이해도가 이렇게 낮은 상황에서 모든 걸 투자자의 책임으로만 돌려서는 곤란하다. 시장을 이끄는 리더들을 비롯해 펀드를 권유하는 판매자들이 이점을 고민하고 빠른 대안 마련을 해야 할 것이다.


월스트리트에서 풀뿌리 개인투자자들을 대변하는 정직하고 사려 깊은 투자이론가인 ‘윌리엄 번스타인(William Bernstein)’은 자신의 저서 ‘투자의 네 기둥( The Four Pillars of Investing)’에서 ‘뮤추얼펀드 행복서열 (mutual fund hierarchy of happiness)’ 에 대해 이렇게 기술했다.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에는 펀드회사가 있다. 펀드를 운용·판매하는 회사들은 수익률과 상관없이 1%의 운용보수와 3%의 선취수수료(*한국의 경우에는 1% 내외)의 판매수수료를 받는다. 펀드매니저의 행복지수는 펀드회사보다 약간 낮다. 쏟아져 들어오는 엄청난 현금을 시장의 특정부분에 투자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데다 굳이 그렇게 하려면 만만치 않은 시장 충격 비용을 각오해야한다.


하지만 다행히 펀드매니저의 이런 고민은 꽤 두둑한 연봉으로 만회되고, 더불어 새로운 슈퍼스타 펀드매니저 반열에 오른다면 그의 보기 드문 ‘재능’을 다른데 가서 발휘하겠다는 위협으로 더 높은 연봉까지 요구할 수도 있어서 고민이 해소된다. 이제 피라미드의 맨 아래가 남았는데 이번에도 역시 펀드 투자자들이 차지한다. 』


펀드회사는 투자자로부터 받은 수수료가 회사를 운영하는 생명줄이다. 따라서 생명줄을 제공하는 투자자가 펀드 행복서열 맨 꼭대기에 위치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는 어떤가? 많은 펀드투자자들이 펀드 행복서열은 맨 아래에 위치해 있다. ‘도박장에서 돈 버는 사람은 도박장 주인하고, 그곳에 기생(寄生)하며 음료수를 팔거나 돈(속칭 꽁지돈)을 빌려주는 사람 밖에 없는 것처럼, 펀드시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비용을 대는 많은 투자자들이 이기적인 판매회사들이 판을 치는 곳에서는 도박장에 도박꾼 대접을 받고 있다.


한 푼의 비용을 아끼고, 조금이라도 수익을 더 내서 투자자에게 돌려주려는 선량한 펀드판매회사들은 억울하다. 지극히 이기적인 펀드회사들로 인해 똑 같이 오물을 뒤집어쓰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스스로 투자자의 신뢰를 저버리는 금융행태나 금융회사를 걸러내는 아픈 자정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투자자들도 깨어날 때가 되었다. 더 이상 투자자 보호 규정 등에 기대어 수동적인 투자 자세로 일관하기 보다는, 제대로 된 펀드회사를 골라내는 안목을 기르는 눈을 갖도록 물어보고 따져보는 투자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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